라마링가 스와미갈 대사님

라마링가 스와미갈…십오 (12.벌랄러의 개성과 독특함)

빛몸 2018. 7. 18. 19:39

12.  벌랄러의 개성과 독특함


어린아이 였을 때 부터 그는 돈, 부 그리고 권력에 관심이 없었다

결코 누구에게도 그를 스와미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진 서로 다른 샌달을 신었고

하얀 옷을 입었다.

신성의 은총 이외에는 세상에 어떤 것에 대한 개인적인 욕망이 없었다.

생명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말을 했으며

여성의 복지에 대하여 얘기했다

결코 높은 곳에 앉지 않았으며, 꼰 다리를 하지도, 손을 흔들면서 걷지도 않았다.

몇 달에 한번씩 한 움큼, 아주 적게 먹었고

다르마살라이Dharmasalai, 급식의 집을 시작하고

생명을 살해하기 위한 모든 도구를 볼 때 마다 그의 척추로 오한이 흘렀다.

그나나사바이Gnanasabhai, 진실한 앎의 사원을 건축했고

모든 불가사의 한 것들을 달성

수드하 데함(완전한 몸), 프라나봐 데함(은총의몸) 그리고 그나나 데함(환희의 몸)에 대해 말씀하셨다

최후의 불가사의를 얻었고 죽은 사람을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그림자 없는 몸

흔히 볼 수 있는 금속을 금으로 바꾸었고

걸을 때 또는 비에 젖었을때 땅에 흔적이 없으며 또는 타오르는 불로도 파괴할 수 없는 몸을 이룬다


최고의 자비의 인간.(물 없이 활기를 잃는 식물의 노래)

인간의 몸을 은총의 빛의 몸으로 변형

은총의 빛의 과학인 아룻파Arutpa 책(책이름)

모든 생명체에 선을 행하기


네 가지 성스런 삶의 규율- 감각, 정신적인 능력들,

개개인의 삶 그리고 은총의 빛을 담고 있는 영혼의 빛과 관련된다.

자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인간의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두려움, 불행, 살인 그리고 육식을 제거하기 위해서 아펠(Appel)을 했고

(아펠: 공격의 의사표시로 마루를 발로 세게구르는 일, 펜싱 용어)

어떤 하급 신들도 숭상하지 않았으며

신성이 신과 자비를 깨닫도록 추천한다.

오로지 자비를 위해서, 그는 세속적인 활동과 봉사에 참가하였다.

….

몇 개의 벌랄러의 개성을 여기에 묘사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터즈후부어 벨라유다 무달리어는 신지학 협회에서 한 그의 성명에서, 벌랄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외형적으로, 벌랄러는 적당히 컸으며, 야윈 - 실제로 뼈가 드러날 정도로 정말로 아주 야윈 -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사람, 몸이 곧게 서있고, 아주 빨리 걷는 사람이었다 : 맑은 금빛의 얼굴, 곧고 가는 코, 매우 크고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얼굴에는 끈임없이 계속되는 슬픔의 모습이 있었다.


끝을 향해서 그는 머리가 길게 자라도록 하였다; 요기로는 상당히 유별 난 것이었다, 그는 신발을 신었고, 그의 옷은 단지 두 조각의 하얀 천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거주지는 극도로 검소했고, 거의 휴식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그는 2-3 일에 한번씩만 먹었으며, 몇 입의 밥으로 만족해했다. 2-3 달간 지속되는 단속기간 동안에는,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오직 설탕을 약간 녹인 따뜻한 물만 마셨다.


그는 매력있는 인품을 가졌다. 열정적인 얼굴, 자비와 은총으로 빛나는 이상하게 좀처럼 잊을 수없는 눈. 우란 아디갈Uran Adigal은 타밀어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벌랄러를 보는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굉장한 벌랄러 였다, 그의 특성(his color)은 굉장했고, 그의 현존은 굉장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그 축복받은 성인은 사진을 초월하는 육체를 가졌다. 사진으로 필름에 잡히지 않았다. 그 육체는 그림자가 없었다.’

놀랍게도 종교적인 시인으로써 라마링가는 자서전적이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생생한 묘사로 종종 자기 자신, 그의 환경, 경험들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는 또한 그의 육체적인 특성, 습관, 옷과 그런 것들을 묘사한다.

그는 항상 하얀 옷을 입었다. 그의 옷은 두 조각의 긴 천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옷도 없었고, 다른 색상도 없었다. 4명에 위대한 고대 힌두의 예언자들 또한 흰옷을 입은 고행자들이었다. 그의 한 강연에서 벌랄러는 말했다:

황토색 가사는 그의 본성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사람,
분투하는 대망을 품은 사람을 나타낸다,
자신의 본성을 정복한 사람은 자비를 얻으며,
그를 위해 하얀색 가사는 승자 큰 뜻을 품은 이에게 어울린다..

그는 또한 한 시에서 그의 하얀색 옷에 대해 언급하면서, 확실히 다른 면모를 설명하고 있다:

흔들리는 팔의 부끄러움,
저는 손을 맞잡고 걷습니다;
가리지 않는 것이 싫어서,
저는 하얀 천으로 제 몸과 머리를 덮었습니다;
그 광경이 저에게 덤벼들지 않도록,
영리함이 어슬렁거리는 곳을
저는 흘끗 거리지 않는다.

이 벌랄러의 걷는 모습은 전형적인 남자를 뚜렷이 나타낸다. 더욱더:

높은 곳에 있는 자리는 저를 불안하게 하며
책상다리로 앉는 것은 억지로 꾸미는 것 같습니다.
나는 감히 부드러운 침대에서 잠을 이룰 수 없으며
높은 연단에 앉아있을 때,
나는 감히 다리를 아래로 펼 수가 없습니다.

큰소리로 말하는것이 나를 괴롭힙니다
이것들로부터 저를 구해주세요, 나의 어머니.
그 밖에, 제가 하루 두 번을 먹을 때,
그리고 오랫 동안 잠을 잘 때-당신은 당신을 위해서
잠과 음식을저에게 제공 했습니다…
그런후에, 내가 오직 한번만 먹을 때, 나의 아버지,
주위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나에게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는 선언한다:

영원히 반복되고 영원히 풍미가 있는 음식의
밀물 속에
모든 억제와 고행이 공허하게 바뀝니다,
흐르는 강물에 던져진 타마린(콩과 열대식물) 처럼

그는 아주 적게 잤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지시사항에서 조언을 하면서, 오직 한밤 중에서 새벽 세시 사이에 잠을 자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메투쿠팜에서 그의 강연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한 시간만 잠을 자도록 조언했다. 상술된 바에 의하면, 그가 젊었을 때 그는 하루에 단 3시간만 잤다, 그 다음에 2시간, 다음에는 1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에 제자들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결국에 그는 전혀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신에게 이야기 하길 ‘저를 위해서 잠을 사라지게 한 신’이라고 했다. 그는 잠자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최고의 빛, 시간의 앞에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빛나는,
당신은 저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까?
저는 밤 또는 낮에 오는 잠을…
잠이 오는 것은 저를 곤란하게 만듭니다.
잠에 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었을때, 저는 당신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신이시여’ 언제 그 잠이 없어집니까?’

그는 잠을 쫓아냈다:

잠, 너 어리석은 얼간이, 조심해!
만약, 이 경고를 듣자마자,
나를 떠나지 않는 다면, 너의 새끼들과더불어,
선을 위해서, 너를 저주할 것이다.
저는 슬픔을 초월했습니다. 저는 창조적인 의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뻐합니다,

나는 너를 위해 있지 않아,
빨리썩 물러나!  저는 제 뒤에 있습니다.
황금의 지혜 영역에 있는 신이시여..

그는 투명하게 진솔했고, 명백히 겸손했으며, 명백하게 성인 같았고 은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고귀한 마음의 마지막 결점-명성을 구하는- 또한 그의 것이 아니었다. 신 안에서 살면서, 스스로 충만해 있었다.:

저에게 드러난 신성의 형태를 알아차리면서, 저는 제 시스템 안에 그것을 더욱더 통합시키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온전히 그나나 데함 바디Gnana Deham body-환희의 몸-으로 변형할 때, 세계가 이를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신성의 소망과 의지는 그 초반에 있는 지금, 제가 서있는 이 은신처를 드러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제가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니 저의 마음은 당황스럽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위업, 마음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마음을 떨어냈다. 그는 보통 우리 인간이 따를 수 없을 것 같은, 다른 차원들 중에 하나로 지구 위로 벗어난다. 벌랄러의 자비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는 이미 완전히 한 장을 할애했다. 수다 산마감Suddha Sanmargam이란 벌랄러의 길을 “무한한 자비, 앎과 지복至福 의 길”로 묘사할 수 있다., 그는 영혼 만들기와 신이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근본적인 것 그리고 유일한 단계로 만들었다. 그의 이런 관점은 전에는 결코 들어 본적이 없는 것이다.

저는 모두가 은총으로 가득한 위대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봉사하여 그들이 스스로 은총의 빛이 드러남이 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본질이 자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생명을 자기 자신으로 보는 사람, 그를 진리로 밝아지게 하고, 나는 그를 신의 아이들의 것으로 내 영혼 안에 둘
것입니다.

제가 구미를 당기는 음식을 볼 때마다, 이 즐거움으로부터 어떤 고통이 생겨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제 마음은 공포로 움츠려 듭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종종 텅 빈 괴로운 위로 남겨집니다,
오 나의 아버지 저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사랑으로 저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고 말합니다:
“알라스, 오 신이시여, 이것으로부터 제가 고통 당하지않게 해주세요”.

저는 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공포로 가득한 채, 그것들을 먹었습니다.

왜 벌랄러는 적게 먹었을까? 여러분의 진동과 영적인 진화가 신성한 은총 안에서 더 자라남에 따라서, 여러분의 육체 안에 신성의 감로수 또는 넥타르가 흐른다그리고 여러분 안에 모든 세포를 먹이게 된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 욕망에 의해서 음식을 먹도록 강요한다면, 이것은 당신의 육체 안에 부조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것은 육체에 고통을 가져다주는데, 음식과 암브로시아 사이의 진동 차이 때문 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기관들이 작용을 해야 한다. 내부 장기의 과대이용으로우리는 더 빨리 늙고 죽음이 더 빨리 온다. 또한 많이 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 음식이 백 번쯤 정화된다면, 그 때는 틀림없이 작은 양의 음식도충분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멈출 때, 그리고 다양한 몸으로 은총이 하강하는 것에 대해 저항이 없다면, 딱딱한 음식의 필요는 사라지고, 신성한 암리타Amrita, 신성한 프라나Prana 또는 신성한은총Grace Light이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