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62

예수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나를 통해 '너희가 진정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너는 모세와 예수가 한 일을 왜 너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자신에게는 아무 권능도 없지만 예수의 권능은 보았다고 믿는다. (혹은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을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 ​예수가 “왜 그렇게 놀라느냐? 너희 역시 이런 일, 아니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그러하다.​너희 모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희는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 혹은 성모 마리아나 이런저런 “수호성인”이나 태양신이나 동방 신들의 이름으로, 너희는 항상 누군가의 이름을―그게 누구의 이름이든―내걸 것이다. 자신의 이름만 빼고!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구하라 그..

예수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나를 통해 '너희가 진정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너는 모세와 예수가 한 일을 왜 너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자신에게는 아무 권능도 없지만 예수의 권능은 보았다고 믿는다.(혹은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을 믿는다.)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예수가 “왜 그렇게 놀라느냐? 너희 역시 이런 일,아니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한다.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이 그러하다.​너희 모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너희는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혹은 성모 마리아나 이런저런 “수호성인”이나 태양신이나동방 신들의 이름으로,너희는 항상 누군가의 이름을―그게 누구의 이름이든―내걸 것이다.자신의 이름만 빼고!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찾아..

신의 다른 이름

​ 당신은 ‘삶’이란 단어를 여기서 많이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전의 대화에서 이 단어는 ‘신’​이라는 단어와 바꿔 써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인류가 결국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내일의 신은 우리에게 전통적인 의미로 ‘신’을 믿지 말고, 단순히 ‘삶’​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겁니까? 네가 삶을 믿을 때 그것을 뭐라 부르든 결국 신을 믿는 것이다. ​네가 무신론자이든 불가지론자이든 아니면 그 중간에 무엇이든 내일의 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하지 않지만, 미래에는 너희가 모두 이런 것을 알 것이고, 모든 인간이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는 유익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 각자가 특정 방식으로 특정 신을 믿었던 결과로 발생한 무수한 갈..

명확함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을?나는 언제나 너희에게 이것을 물을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자신이 체험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후에는 결과들이 즉각 나타나기 때문이니, 너희라도 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그런 생각이 창조해내는 체험 사이의 연결관계를 놓칠 리 없을 것이다​너희가 가장 아끼는 소망, 너희의 가장 큰 바람을 주는 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주가 알고자 하는 것 역시 언제나 이것이다. 사실 우주는 날마다, 순간마다 이렇게 하고 있다. 우주란 너희 생각을 물질형상으로 재생산하는 거대한 복사기다. ​명확함이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네 삶이 “도약하길” 바란다면 먼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주 명확해져야 한다.자신이 되고 싶고, 하고 싶고..

신나이 시크릿 (부와 행복을 끌어당기는 법칙)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남에게 주어라.네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고,네가 풍족해지기를 원하면, 남을 풍족하게 만들어라.또 네가 삶에서 더 많은 사랑을 원한다면, 남들이 그들의 삶에서 더 많은 사랑을 갖게 만들어라.​진지하게 이렇게 하라. 사리사욕을 구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되기를 네가 진심으로 원해서. 그러면 네가 내주는 모든 것이 네게 되돌아오리니.​어떤 것을 내주는 행동 자체가 내주기 위해 그것을 갖는 체험을 너더러 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갖지 않은 것을 남들에게 줄 수는 없는 법이니, 네 마음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결론, 새로운 생각에 도달한다. 즉 너는 이걸 가진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걸 내줄 리 없다고.​그러고 나면 이제 이 새로운 생각이..

“아버지시여, 아버지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옛날에 자신이 빛인 걸 아는 한 영혼이 있었다. 이것은 새로 생겨난 영혼이어서 체험을 갈망했다. 그것은 “나는 빛이다. 나는 빛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것의 어떤 앎도, 또 그것의 어떤 말도 그것의 체험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영혼이 생겨난 영역에는 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영혼이 다 위대했으며 모든 영혼이 다 장엄했고, 내외경스런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그 작은 영혼은 햇빛 속의 촛불 같았다. 작은 영혼 자신이 그 일부인, 그 위대한 빛 속에서 그것은 자신을 볼 수도 없었고, 자신을 ‘참된 자신’으로 체험할 수도 없었다.​이제 그 영혼은 자신을 알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 바람이 너무나 커서 하루는 내가(신이) 이렇게 말했다. ​“작은 영혼이여..

아플 순 있지만, 굳이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 아니다

아픔은 그냥 하나의 체험이지만, 고통은 그 체험을 놓고 내리는 판단이다. 아픔이 신체적이거나 감정적인 체험이라면, 고통은 그것을 바라보는 네 관점이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아픔을 달갑지 않은 것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아픔을 완벽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삶의 고통도 꼭 그만큼 제거될 수 있다. 그러니 아픔과 고통은 같은 것이 아니다.아픔을 느낄 때 고통을 끝내고 싶다면, 그 아픔이 있는 목적에 관한 네 마음을 바꿔라. 아픔을 이용하라. 체험을 성형하는 도구로서 아픔을 바라봐라.​고통은 너희가 어떤 것에 관해 내린 판단 때문에 생긴다. 그 판단을 제거해보라. 그러면 고통이 사라진다.판단은 흔히 과거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한 너희의 관념은 그것에 관한 이전..

신성한 이분법

좋다. 이제부터 나는 너희에게 믿기 힘든 사실을 말하려 한다. 나는 너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있다....... 물론 너희가 그걸 언제나 아는 건 아니란 사실은 나도 인정하지만. 이 수수께끼는 이제 조금은 명료해져서, 너희는 내가 무엇에 맞먹는 존재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자, 여신이다. 나는 ‘지고의 존재’고, 나는 ‘전부의 전부’다. 나는 시작이면서 끝이고, 알파이면서 오메가다. 나는 총합이면서 본질이고, 질문이면서 대답이다. 나는 위이면서 그것의 아래고, 왼쪽이면서 오른쪽이며, 여기면서 지금이고, 전이면서 후다. 나는 빛이면서, 빛을 창조하고 그것이 빛이게 만드는 어둠이다. 나는 끝없는 “좋음”이면서, “좋음”을 좋게 만드는 “나쁨”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 전부의 전부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