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아플 순 있지만, 굳이 고통스러워야 하는 건 아니다

빛몸 2024. 4. 25. 19:48

 

아픔은 그냥 하나의 체험이지만, 고통은 그 체험을 놓고 내리는 판단이다.

아픔이 신체적이거나 감정적인 체험이라면, 고통은 그것을 바라보는 네 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아픔을 달갑지 않은 것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아픔을 완벽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삶의 고통도 꼭 그만큼 제거될 수 있다.

그러니 아픔과 고통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아픔을 느낄 때 고통을 끝내고 싶다면, 그 아픔이 있는 목적에 관한 네 마음을 바꿔라.

아픔을 이용하라. 체험을 성형하는 도구로서 아픔을 바라봐라.

고통은 너희가 어떤 것에 관해 내린 판단 때문에 생긴다.

그 판단을 제거해보라. 그러면 고통이 사라진다.

판단은 흔히 과거의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한 너희의 관념은 그것에 관한 이전 관념에서 나온다.

이전 관념은 그보다 더 앞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고,

또 그 관념은 다시 그보다 더 앞의 관념에서 나오고....... 마치 벽돌을 쌓듯이.

이 거울의 방 속에서 내가 ‘맨처음 생각’ first thought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 갈 때까지.

나는 너희에게서 고통을 끝장냈다.

다만 너희가 내가 준,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하길 거부할 뿐이다.

이제 너도 아다시피, 고통은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관련이 있는 것은 사건에 대한 너희의 반응이다.

일어나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너희가 어떻게 느끼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사건에 대응하고 반응할 때,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아니 사실은 없앨 수 있는 도구들을 너희에게 줬으니,

너희는 그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치료cure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지만,

치유heal란 상황을 체험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통’이라는 상황에 놓일 때,

너는 자신이 처한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체험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너희가 모두 이렇게 해 왔다.

너희는 두통이 너희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냥 마음먹고는,

두통이야 어찌 됐든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간다.

그러면 곧 너희는 여전히 두통을 느끼면서도

그것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자신을 체험한다.

‘치료하지’ 않고도 ‘치유한다’는 의미가 이것이다.

그런데 이런 치유는 자주 치료도 된다. 어느샌가 두통이 사라지고 만다.

저절로, 그리고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건 아무것도 없다.

고통은 잘못된 생각의 결과다. 그것은 생각의 오류이다.

선각자들은 가장 쓰라린 고통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선각자들은 이런 식으로 치료한다.

고통은 인간 체험 중에서 불필요한 측면이다.

그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리석고 불편한 측면이다.

또 그것은 너희 건강에 해롭다.

인간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해서든,

나를 활용하고, 나를 불러내고, 나와 친구가 되고, 내 창조력과 치유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나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참된 선각자는 결코 말없이 고통받지 않는다.

그냥 불평없이 고통받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참된 선각자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

소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그냥 체험할 뿐이기 때문이다.

아픔의 체험을 고통이 아닌 그냥 아픔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선각자들은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말이 어떤 힘을 갖는지 명확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에 관해서는 그저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현실이 된다. 선각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선각자는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지 스스로 선택한다.

너희들은 이따금 이렇게 해왔다.

너희 중에 두통이 사라지게 해보지 않은 사람이나,

치과 가는 고통을 줄여보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렇게 이루어졌다.

참된 선각자는 이와 똑같은 결정을 단지 더 큰 일들에 대해서 내릴 뿐이다.

 

이제 너는 점점 더 고통 없이도 즐거움을 누려가고 있다. 아주 좋은 징조다.

너는 고통 없이 사랑하고, 고통 없이 떠나보내고,

고통 없이 창조하고, 고통 없이 우는 법까지 배워가고(기억해가고) 있다.

그렇다.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너는 고통 없이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다.

-신과나눈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