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극도의 탈진을 느끼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6/17]

빛몸 2023. 3. 10. 20:30

[대화록 회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탈진을 느끼신 적이 있을까요?

 

많이 그랬습니다. 저는.

돌이켜보면 탈진이 오는 신호가 있는데 무시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감당을 못하고 병이 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주는 유독 탈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여러 가지 악습들과 생각들이 저를 덮칩니다.

나쁜 걸 알면서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게 좀 더 적절하리라 봅니다.

내면아이도 힘들어했고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날은 정말 특별한 날로 기억을 할 것입니다.

이 날은 내면아이가 저를 향해 소원을 하나 빌었기 때문입니다.

'힘들지 않았으면, 자기 상처가 다 아물었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머리가 띵 하는 것처럼 맞았습니다.

사실 대체로 제가 세웠던 목표는 누군가로부터 들은 정보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목표만큼은 온전히 제 안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6/17 대화일지]

나: 내면아이야, 부탁할 게 하나 있단다.

내면아이: 안녕? 무언데?

나: 미안해. 내가 너무 지쳐서 그래. 지난 주말에 아무 것도 못하고, 물 먹은 솜 마냥 완전히 축 쳐져 있었거든. 도저히 뭘 할 수가 없었어.

내면아이: 나도, 힘들어. 쉬고 싶어.

나: 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모험을 하는 거, 나도 돕고 싶어. 그렇지만 내가 너무 지쳐 있어. 너무 무분별하게 에너지를 썼다는 걸 인정해. 미안해.

내면아이: 싫어. 모험하고 싶단 말이야.

 

나: 내면아이야,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어둠으로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우리 게임 생각해볼래? 우리가 새로운 곳으로 모험 가기 전에 HP랑 MP 보충해서 가잖아?

내면아이: 응.

나: 그런 것처럼 우리도 HP랑 MP를 보충해야 된다는 말이야. 지금 네 상처를 돌봐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서 HP/MP가 많이 떨어진 거야.

내면아이: 내가… 잘못한 거야?

나: 내면아이야, 죄책감을 느끼는 구나.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한 거 없어. 결단코! 그 어느 누가 와서 네가 잘못했다고 얘기한다 해도 그건 네 잘못이 절대 아니야.

내면아이: 나, 너 힘들게 한 거야? 그런 거야?

나: 내면아이야. 힘들게 한 건 나지. 왜 네가 나를 힘들게 하니?

내면아이: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하다)

나: 아이고. 이 못 말리는 내면아이야. 이리 와봐. 내 품에 다시 안기렴.

내면아이: (조금씩 걸어가다 내 품에 안긴다)

 

나: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응?

나: 내가 지쳤다고 그랬지?

내면아이: 응.

나: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당연한 거고.

내면아이: 응.

나: 나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때로는 실수할 때가 많아. 지난 수요일에 충분히 휴식을 취했어야 하는데,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계속 게임하고, 에너지를 낭비했어. 결국에는 탈진될 때까지 나를 방치한 거야.

내면아이: 응.

나: 내가 만들고 방치한 습관. 욕심. 이 모든 것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힘든 거야. 네가 잘못한 건 결코 없어. 알겠니?

내면아이: 응.

 

나: 그래. 다행이야. 우리가 어둠으로 들어가기 전에 축제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축제를 너무 크게 한 나머지 여행할 에너지 조차도 없는 거라고 봐도 돼.

나도 어둠 속에 들어가기 무서워서 계속 미루는 것일 수도 있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있어. 하지만, 너와 약속한 대로 반드시 어둠 속으로 들어갈 거야.

내면아이: 나, 아직 아파. 그래도 어둠 속에 가고 싶어.

 

나: 그래. 네 아픔을 잊지 않을게. 지난 주말에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서 스스로가 미웠어.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패배주의랑,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비관주의. 이 감정이 다시 폭풍우처럼 몰아쳐서 정말 힘들었어.

내면아이: 나, 아무것도 못해?

나: 그렇지 않아! 다만 내 안에 쌓여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야. 너를 올바르게 대하는 것 또한 배워야 하는 거고. 네가 어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도 내가 배워야 할 일종의 하나라고 생각해.

 

내면아이: 나, 내가 진짜 원하는 거 이뤘으면 좋겠다?

나: 뭔데?

내면아이: 네가 힘들어하지 않는 거. 그리고 내 상처가 낫는 거.

나: 그래. 고마워. 나도 그래. 나도 네가 힘들어하지 않고, 상처가 나았으면 해.

내면아이: 고마워.

 

나: 그래. 극도의 탈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에너지를 회복해보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자연의 정기를 담은 과일들도 먹고, 바깥에서 걷기도 하고, 쉬어야 하겠다고 느끼면 목욕탕 가서 충분히 피로를 풀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서 휴식하기도 하고, 맨발로도 걷고.

내면아이: 나, 자연의 품에서 쉬고 싶어.

나: 그래. 이번 주에는 내려가서 쉴 거야. 야채들이 얼만큼 자라났는지, 부모님은 어떤지, 주변의 환경은 어떤지 한 번 살펴보자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혼자서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자. 굳이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펜션이나 1인 휴양지 이런 거 찾아서 가봐도 되니까.

내면아이: 그러고 싶어.

 

나: 그렇게 하자. (내면아이를 껴안으며 다시 속삭인다) 내면아이야. 사랑해.

그리고, 주말에 너를 향해 못된 말들을 많이 해서 미안해. 네가 필요 없다느니,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느니 등. 내가 너무 괴로워서 너를 괴롭혔어. 내가 너무 아팠어. 그 아픔 함께 느껴줄 수 있겠니?

내면아이: 응.

 

나: 그래. 주말에 그랬던 기억들을 함께 되돌아보자


[기억이 재생되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내 자신을 보며 욕하는 모습.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에 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인생을 망칠 것이라고 자책하는 모습.

그간 해온 모든 것이 소용 없다고 욕하는 내 모습.

몸이 너무 힘들어 침대에만 계속 누운 모습.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모습.


나: 이 기억들을 재생하게 되었구나. 함께 이 기억을 재생하고 정화하자.

내면아이: 좋아.

나: 이러한 기억들이 재생되도록 방치한 제 자신, 그리고 내면아이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주말에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게 만든 기억들에 대해 용서를 진정으로 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게 해주심에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내면아이와 이 정화 작업을 함께 해줄 수 있게 해주셔서 사랑합니다.

내면아이: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 기억하는구나? 호오포노포노.

내면아이: 응.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