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어둠을 탐험하기 시작하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6/16]

빛몸 2023. 3. 10. 20:29

[대화록 회고]

내면아이로부터 믿음을 받은 것일까요?

제 손을 잡으면서 나를 믿는다는 말을 합니다.

내면아이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제 안의 어둠을 탐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건강해지면서, 힘을 얻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기만 했었다는 것을 사실대로 인정하게 되면서

역설적이게도 비로소 제 손을 잡기 시작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내면에 빛과 어둠이 존재합니다.

이전에는 이 어둠을 무서웠고 거기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어둠이 무서우나 이 덕분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내면아이가 어둠으로 가고 싶다는 얘기는

비로소 제가 꽁꽁 숨겨두거나 처리하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대면하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아이가 생각보다 강인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옵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끄집어 냈을 때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것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보니 어둠 속에 만져지는 것들을 끄집어 내서 청소하는 게 좋겠다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면 집안 청소를 주기적으로 도맡아 하듯이 말입니다.

[6/16 내면아이와의 대화록]

나: 내면아이야, 호오포노포노.

내면아이: 안녕?

 

나: 어제 일이 있고 나서 괜찮아졌니?

내면아이: 응. 괜찮아졌어.

나: 그랬구나.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내면아이: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

나: 고마워.

내면아이: 나도.

 

나: 내면아이야, 내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면아이: 뭐야? 어떤 거야?

 

나: 너 만약에 ‘잘 살고 있니?’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 같아?

내면아이: (잠깐 가만히 있다가) 잘 못살고 있다고 말할래.

나: 그래?

내면아이: 나 아직도 아프잖아.

 

나: 그래.. (약간 비관주의를 띠며)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아직 많이 아프잖아.

내면아이: 나, 그래도 아픈 게 나아지는 거 같아.

나: 나도 그렇게 느껴. 상처투성이인 몸에서 서서히 네 건강한 몸이 나오는 거 같아.

 

내면아이: (갑작스레)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싶어.

나: 그래? 지난 번에 들어가기로 약속했다가 늦춰졌지. 그래. 준비됐니?

내면아이: 응. 난 언제나 들어가고 싶어.

나: 지금 들어가보고 싶나 보구나. 내면아이야. 다만 내가 하나 말해둘 게 있어.

내면아이: 뭔데?

나: 지난 번에도 말한 거 같은데, 어두운데 들어가면 아예 길을 잃고 주저앉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니?

 

내면아이: 괜찮아. 나랑 같이 헤매줄 거잖아.

나: (약간 충격을 받으며) 아…

내면아이: 나, 가고 싶어.

나: (소름이 돋아 떨다) 나 사실 두려워.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네. 잠시만. (시간을 두고 심호흡을 하다) 그래. 같이 들어가자.

내면아이: 응!

 

[나와 내면아이가 어둠 앞으로 다가서다.]

 

내면아이: (내 손을 꽉 붙들어 안다) 나, 놓치지 말아줘.

나: 그래. (손을 꼭 잡아주며) 손이 차갑구나.

내면아이: 갈래.

나: 그래. 가자.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다.]

 

나: 내면아이야. 느낌이 어떠니?

내면아이: (약간의 설레임을 띠며) 신기해.

나: 편안하니?

내면아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편안해.

나: 잠시 다른 손으로 너를 만져봐도 괜찮겠니?

내면아이: 응.

 

[나는 다른 손으로 내면아이를 만져보기 시작하다. 대부분은 상처였지만, 군데군데 상처가 아닌 부분들도 느껴지다.]

 

나: 계속 우리 앞으로 걸어가볼까?

내면아이: 나 무서워.

나: 그래. 여기 잠시 앉아볼까?

내면아이: 앉을래!

 

그러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다.

 

나: 내면아이야. 잠시만. 뭔가 있어.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

내면아이: 뭔데?

나: 나도 잘 모르겠어. (구부려 앉아서 움직이는 걸 만져보다) 이크! 에휴 놀래라.

내면아이: (같이 깜짝 놀라다)

나: (잠깐 망설이다가 움직이는 것을 서서히 건드려보고 손에 잡아보다) 이게, 뭐지? 벌레는 아니고, 사람도 아닌 거 같은데.

내면아이: 나 무서워. (손을 더욱 꽉 잡다)

나: 괜찮아. 내 손만 놓치지 않으면 되. (물컹거리는 것을 잡으며 중얼거리다.) 이게 뭘까? 일반적으로 만지는 것들이랑은 느낌이 다른데. (가져온 전등으로 비춰보다) 욱!

내면아이: 이게 뭐야?

나: 내면아이야. 이거, 아무래도 살점인 거 같아.

내면아이: 징그러워!!!

나: 나도 그래. 그나저나 왜 이게 여기 있지? 모르겠네.

 

내면아이: 나 돌아가고 싶어.

나: 그래. 일단은 돌아가자.

 

[한 쪽 손은 내면아이의 손을, 다른 한 쪽 손을 살점을 가지고 나오다. 그리고 빛이 있는 곳으로 옮기면서 털썩 주저앉다.]

 

내면아이: 냄새 나. 징그러워. (구역질하다) 우웩.

나: 내면아이야, 어쩌면 있잖아?

내면아이: 응?

나: 내가 나도 모르게 버렸던 일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

내면아이: 이런 걸 버렸다고?

나: 처음부터는 이러지 않았겠지. 오래 놔두다 보면 썩기 마련이야. 어쩌면 내가 어두운 데에다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밀어 넣은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