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진짜 잘 살고 있나 궁금하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6/11]

빛몸 2023. 3. 10. 20:26

[대화록 회고]

조금씩 나아지면서 희망을 가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문장 앞에서 멈추게 되더군요.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실제로는 그 사람이 잘 살고 있지 못하다'

이 말을 마주치고 가면서 맥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바라보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하는 거 아닐까?

이 문장을 내면아이에게 한 번 얘기해봐야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얘기하기도 전에 내면아이가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이제야 서서히 숨을 쉬고, 천천히 일어서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을 하는게 당연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해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현재 느낌으로 봤을 때는 '잘 살고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틀고 있다'는 것

정확한 표현이라고 느낍니다.

아마 먼저 '살아 있다'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저한테 주어진 과제이겠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나다움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지

잘 살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만의 답, 진실을 얘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으리라 보입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잘 모릅니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올 지 모릅니다.

기나긴 여정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 되면 내면아이는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기대와 상상을 합니다.

이 날은 여정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된 하루로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6/11 내면아이와의 대화]

내면아이: 나 살고 있는 거야? (내면아이가 먼저 물어본다)

나: 내면아이야, 무슨 일이니? 살고 있는지 아닌지 그런 걸 물어보고.

 

내면아이: 나 모른 채로 살았잖아?

나: 그랬었지. 지금은 너를 보고 있잖아?

내면아이: 나, 살아 있는 거..야?

나: 맞아. 혹시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실제로는 그 사람이 잘 살고 있지 못한다.’는 문구를 봐서 그러는 거니?

 

내면아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응.

나: 네가 보기에는 나 어떤 거 같으니?

내면아이: 거의 반 쯤 죽은 거 같아. 반은 산 거 같고.

나: 그렇게 느꼈다면 그 말이 맞지. 물론 너를 만나기 이전에는 거의 죽은 것과 같은 상태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그 뒤로 많이 회복되었어. 그래서 너를 만나게 된 거고.

 

내면아이: 나, 없었나봐?

나: 그래. 있었으면서 동시에 없었어. 네가 있었는데도 알지 못했으니까.

내면아이: 나, 또 아파.

나: 아픈 감정 느끼자. 괜찮지 않은 거 알아. 그래도 괜찮아져보자.

 

[같이 잠시 감정을 느껴본다]

나: 어때, 지금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조금 드니?

내면아이: 조금은. 숨을 약간 쉴 수 있는 거 같아.

나: 그래. 다행이다.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거든. 점원 분이 음식을 갖다 줄 때 진짜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내면아이: 고마워. 나를 향해 웃어줘서.

나: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인 거지. 그런데,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응?

 

나: 너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무엇인 거 같니?

내면아이: 음...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내가 뭘 해도 온전히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

나: 그러니?

내면아이: 응.

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내가 지금 보고 있는데, 그런 느낌일 수 있겠구나. 여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 남주인공의 도청하고,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도 남주인공이 용서하고 그러는 거. 그게 진짜 어른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내면아이: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그래. 나도 그래. 그 드라마 요약본으로 봤지만 왜 본 사람들마다 ‘인생 드라마’라고 했는지 싶어. 그토록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드라마를 통해 위로를 받았나봐.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진짜 어른을 기다리는 거고.

내면아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어.

나: 그렇지. 진심으로 행복을 기원하는 이 마음. 정말 오랜만이네. 이 마음 10대 때까지만 해도 유지가 되었는데, 20대 때는 완전히 잊고 살았지. 오히려 30대가 되니까 이게 회복된다는 게 참 고마워.

내면아이: 나도, 고마워.

 

나: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응?

나: 아파했던 마음을 진짜 어루만져주고 싶어. 과거에 내가 잘못을 해서 스스로 괴롭게 만든 거. 나, 잘못했었던 일들이 정말 너무 많아. 대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원 때도 그렇고, 회사 들어와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도 그렇고.

내면아이: 나, 아파. 그래도 조금 아파.

나: 그랬구나. 아팠구나. 미안해. 그리고 회복한 거 같아서 다행이야.

 

내면아이: 나, 조금은 걸을 수 있을 거 같아.

나: 그래? 천천히 걸어볼까?

내면아이: 대신 내 손 좀 잡아줘.

나: 그럴게. (손을 내밀다. 내면아이의 그 여린 손을 붙잡다) 내면아이야, 어디로 가고 싶어?

내면아이: 밑으로. 어두운 데로도 가보고 싶어.

나: 무섭지 않겠어?

내면아이: 무서워. 그래도 궁금해. 가보고 싶어.

 

나: 그래. 내가 천천히 걸어갈 게. 손은 항상 잡고 있어야 해. 그리고 만일 내 손 놓쳤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최대한 크게 내 이름을 부르렴.

내면아이: 빛이 있으면 해. 나, 앞에 다가가니까 무서워.

나: 그래. 빛이라... 이 자그마한 사랑이라는 빛 어떠니?

내면아이: 좋아.

나: 그래. 그러면 어둠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하나하나 보면서 말이야. 대신에 또 다칠 수도 있어. 다만 느리게, 천천히 움직일게.

내면아이: 와! 신나는 탐험이다.

 

나: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왜?

나: 상처가 다 나으면 움직이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두운 곳에 있다가 돌부리 걸려 넘어질 수도 있잖아?

내면아이: 그래도 가고 싶어.

나: 그래?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면아이: 어떻게?

나: 예상치 못한 상처가 생겨서 네가 아프면 원 상태로 돌아올게. 물론, 낫기 위해서 아플 때도 있지만, 왜 그런지 정확히 봐야 하니까 말이야.

내면아이: (쑥쓰러우면서) 그래도 계속 가고 싶은데.

나: 내면아이야, 나는 너를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고, 동시에 네가 다치지 않도록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야. 네가 가끔 떼를 쓸 때, 올바른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할 때도 있어. 그걸 해 내는 게 결국에는 네가 가장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 될 거야.

내면아이: (잠시 있다가) 나 또 잊어버리는 거야?

나: 내면아이야, 그래. 어둠 속에서 여행을 하다가 너를 잊을 수 있어. 30년 간 헤매다가 너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이번에도 너를 잊지 않고 곁에 있을 수 있게 분명히 책임지려고 할 거야. 너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이니까.

내면아이: (울음을 터뜨린다) 우와왕!!

나: 그래. 아팠구나. 미안해. 어두운 데 가기 전에 꼭 안아줄게. (내면아이를 다시 꼭 안아주다) 울음 흘리고 싶을 때까지 울렴.

[한참을 울고 나서]

 

내면아이: 나, 괜찮아졌어.

나: 그래. 그러면 네가 말했던 곳으로 한 번 가볼까?

내면아이: 응!

나: 두렵지만 새로운 곳을 향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