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못난이라고 보는 나 자신을 보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6/6]

빛몸 2023. 3. 10. 20:25

[대화록 회고]

자기 자신을 못난이라고 바라본 기억들을 되새겨 봅니다.

10대 이전에는 이런 기억이 없다가, 10대와 20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하는 못난이, 바보, 멍청이야!'

이 말을 언제부터 제 스스로에게 얘기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게 압니다.

이 말은 내면아이에게 커다란 가시로 단단하게 박혀 있었던 사실을요.

 

10대와 20대 때 정말 자학적인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뭘 해도 안 된다는 비관주의와 패배주의.

그 때마다 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전혀 도리가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제가 이런 걸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누군가가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든 간에 저는 그저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걸로 제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내면아이를 향해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고함을 친 셈입니다.

 

이 날은 내면아이가 '못나보인다'고 처음 고백했던 날입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나으면서 서서히 내면아이가 담고 있던 말을 얘기합니다.

계속 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6/6 내면아이와의 대화]

나: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안녕? 나 피곤해.

나: 무슨 일 있니?

내면아이: 잘 모르겠어.

나: 그렇구나. 피곤한 줄 몰랐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내면아이: 나, 내 상처들 나으면서 피곤한 줄 몰랐나봐.

나: 내가 지금 너 안아줘도 괜찮을까?

내면아이: 응. 나 안아줘.

나: 거기 있어. 내가 가서 안아줄게.

(나는 내면아이를 꼭 안아준다.)

 

나: 아직 상처가 많네. 그래도 이전보다는 괜찮아 진 것 같아.

내면아이: 나 아예 몰랐을 때보다 나아졌어?

나: 그래. 너를 만난 지 한 1주일 정도 되었지?

내면아이: 응.

나: 그간 무슨 변화가 있는지 말해줘도 될까?

내면아이: 얘기해줘.

 

나: 요즘에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좀 더 하게 되더라고.

내면아이: 정말?

나: 그러더라고. 토요일이랑 오늘 내내 거의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운동했어.

내면아이: 신기하다. 나 아파서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중략]

내면아이: 나, 아빠한테 사랑받고 싶어.

나: 그래?

내면아이: 응. 나 내 부모님한테 진짜 사랑을 받고 싶었어.

나: 그렇구나.

내면아이: 근데 아빠 볼 때마다 항상 아파. 나 아빠한테 상처 많이 받았나봐.

나: 그랬지. 그래서 분노가 올라왔을 때 아버지한테 못할 짓들 정말 많이 했지.

 

내면아이: 나, 그렇게 할 줄 몰랐어. 나 너무 나쁜 아이인가 봐.

나: (너무나 깜짝 놀라다)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응?

나: 내가 너무 놀랐어. 네가 스스로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다니.

 

내면아이: 아니야?

나: 글쎄. 잘 모르겠어, 다만 네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내가 억지로 눌렀다는 것은 미안해. 너한테 너무 무거운 짐을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

내면아이: 나, 지금도 그런가 봐.

나: 너한테 모든 걸 떠넘기고 숨도 못 쉬게 한 내가 너한테 너무 나쁘게 굴었구나. 미안해.

 

내면아이: 나 무서워.

나: 나도 그래. 무서워.

내면아이: 괜찮아지고 싶어.

나: 한 번 더 안아줘도 괜찮겠니?

내면아이: 응.

(나는 내면아이를 다시 한 번 안아준다.)

 

나: (안은 상태에서) 미안해. 그 때 무서움을 느꼈던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해서. 네가 느끼는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주지 못해서.

내면아이: (다시 울기 시작하다) 나,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았나봐.

나: 그렇지 않아. 네 잘못은 진정으로 단 하나도 없어.

내면아이: 아니야. 내 잘못이야.

나: 혹시 죄스럽니?

내면아이: 응.

나: 그조차도 알아봐 주지 않아서 미안해. 그걸 똑바로 마주보지 않고 피했어.

내면아이: 나, 마치 어두운 곳에서 들어가서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들겨 맞는 느낌이야.

나: 그래. 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었지. 뭔가 잘못을 했다는 기억도 있고, 억울한 것도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내면아이: 나, 버림 받았나봐.

나: 버림 받았다니?

내면아이: 그 때 아무도 없었잖아.

나: 그런 줄 알았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왜?

나: 나랑 함께 있잖니. 다만 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 어두컴컴한 곳에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바라봐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너한테 미안해. 그냥 그걸 온전히 받아들여볼게.

내면아이: 나랑 함께 있어줬으면 해.

나: 그렇게 하려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 나도 바깥 생활을 소화하느라 가끔 너를 생각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매일 같이 너에게 얘기를 나누도록 할게. 그래도 네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는 중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내면아이: 나 나중에 다 나으면 하고 싶은 게 있어.

나: 무엇이니?

내면아이: 나, 마음껏 뛰어놀고 싶어.

나: 물론. 얼마든지. 나, 최근에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으니, 자전거 타고 다른 데 다녀 봐도 괜찮을 거 같아.

내면아이: 나도 좋아.

나: 상처 어느 정도 아물면 그 때 자전거로 우리 같이 여행해볼까? 네가 진짜 원하면 그렇게 해보려고.

내면아이: 싫어, 아직은.

나: 그랬구나. 괜찮아. 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게 먼저니까.

내면아이: 그래도 고마워. 내 얘기 들어줘서.

나: 고맙긴. 그간 해야 할 일을 못한 거라 내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 용서해줘. 그리고 상처 입힌 나에게 그냥 다가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내면아이: 나도. 사랑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