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자기기만이 내면아이를 분노케 하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6/15]

빛몸 2023. 3. 10. 20:28

[대화록 회고]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그 일을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생명이 몇 개월 뒤면 끝나는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거짓을 말하고 환자를 안심시켜야 할지

갈림길에서 크나큰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제 경우에는 이 정도는 아닙니다.

사람의 목숨이 넘나드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다만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자기기만하지 않는 것'이라고 다짐했기에

하얀 거짓말을 한 순간 내면아이가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훈련하려 노력했기에 더 심한 것일 겁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니, 잘 모르겠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내면아이가 용서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당화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오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내면아이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6/15 내면아이와의 대화]

나: 안녕? 오늘은 좀 어떠니?

내면아이: 나, 너무 화나.

 

나: 그렇지. 내가 또 너를 속였어.

내면아이: 나를 또 아프게 했어. 나 너무 아파.

 

나: 내면아이야. 미안해. 나 스스로 속였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스스로 속인 부분이 있어. 지금 나한테도 너무 분노가 일어나고, 불일치가 일어나서 미칠 거 같아.

내면아이: 날 버렸어!!

나: 미안해. 너를 또 버렸구나. 버린 느낌이 또 들었구나.

내면아이: 나 괜찮아졌는데, 또 날 버렸어! 버렸다고!

나: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무릎을 꿇다) 내면아이야. 정말 잘못했어. 나, 정말 나약한 존재야.

 

내면아이: (울기 시작하다) 훌쩍..

나: 나, 스스로 속이지 않고 살기로 약속해놓고는 또 그 약속을 어겼어. 대신 내가 이런 선택한 것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질게. 이전 같으면 도망쳤다면, 도망가지 않고 꿋꿋이 견딜게. 너한테라도 맞아야 한다면 기꺼이 맞을 거고.

 

내면아이: (나에게 다가와서 난리를 피우기 시작하다) 왜 했어? 나 아파!

나: 미안해. 나 너를 챙기는 게 최우선인데, 약속을 저버렸어. 내가 이런 걸 하게 방치해둔 내가 잘못한 거야.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온전히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데로 가야 하는데.

내면아이: (엉엉 운다) 나, 아파! 상처 또 난다고! 아프다고!

나: (나도 울기 시작하다) 어떡해… 어떡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의 약속을 제대로 못 지켜서 미안해. 너와의 약속 못 지키게 이런 환경에 스스로 놓이게 방치시킨 것도 미안해.

내면아이: (결국 울음을 완전히 터뜨리며, 눈물범벅이 된다) 우와왕!

나: (나 또한 눈물을 터뜨린다) 나, 내가 너무 원망스럽게 느껴져. 자기 사랑. 자기 신뢰,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악착같이 하면서도 이런 순간에 무너지는 내가 싫어. (펑펑 운다) 나,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해?

 

내면아이: (상처가 다시 생기고 벌어지다) 너무 아파.

나: 나도 지친다. 내면아이야. 상처 잘 보듬어 주고 왔었는데, 상처가 또 생기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내면아이야, 힘들테니 조금 쉬고 있으렴.

 

[6/15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에서 에이션트 원이 한 일. 거대한 악이 지구로 침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악의 힘을 빌려서 지구를 지킨 것. 어쩌면… 내가 그간 순진한 양처럼 행동해 온 것에 대한 사실을 인정해야 할 수 있다. 늑대가 되어 나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 맞다. 늑대가 된다는 것은 어리숙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서 더 큰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떤 때는 그 잘못을 저질러야 한다.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피하지 않고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전 같으면 그런 돌팔매질을 받기 싫어서 안 해 온 것이 있었다면, 지금은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진정성의 면 중 하나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화하지 말라. 어쩔 수 없이 한 게 아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