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링가 스와미갈 대사님

라마링가 스와미갈…십일

빛몸 2018. 7. 17. 22:20

라마링가 스와미갈…십일


8. 치담바람Chidambaram과의 연결


마드라스에서 그에게 쏟아진 존경에도 불구하고, 벌랄러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시밖에서 보내면서 밤에만 집에 돌아왔다. 그는 이것을 한 시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가 마드라스를 떠나고 나서 오랜 뒤에 쓰여진 것이었다:


나는 부에 대한 광기 때문에 마드라스를 두려워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심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두려워했다.


1858년 35세의 나이에, 첫번째 혹은 두번째 해를 제외하고는 마드라스에 살던 동안에,그는 계속 그 도시를 떠났다. 몇 명의 학생들을 동반한 채로.


그는 여전히 그의 기억속에 따뜻하게 빛나는 치담바람을 향해 걸어서 출발했다. 마러더에서 태어나고, 계속해서 마드라스, 카런구지, 바달러 그리고 메툭쿠빰에서 연속적으로 살아왔지만, 그는 자신을 ‘치담바람라마링감’이라 부르며 치담바람을 그의 성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는 치담바람과 연결되어, 시간을 보낸다, 도중에 위대한 힌도 성인 띠루그나나-삼반다(ThirugnanaSambandar)의 출생지인 써하지(Sirhazhi) 같은 신성한 신전들을 방문하였다, 띠루그나나 삼반다는 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적인 안내자로 채택한 분이셨다.


그는 사원에서 강연을 했으며,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그 다음 그는 바이띠스와란 코일Vaithiswaran Koil을 방문하고, 여기서 역시 노래와 찬양가를 작곡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마을인 마러더 근처에 카런구지에 도착하였다. 그의 큰 형인, 파라수라마 필라이가 그곳에 살았었고 벌랄러가 도착한 몇 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 벌랄러가 치담바람을 향해서 그 곳을 떠나려하자, 벤카타 레디아란 이름의 그 마을의 회계사가 그의 집에 머무르기를 요청하였다,그 다음 그는 그곳에 계속해서 머물렀다. 방은 따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벤카타 레디아와 그의 아내 무띠얄루 암말은 9년 동안, 그가 1867년 카런구지를 떠날 때까지 충실하게 그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겼다.


마드라스에서 벌랄러는 오직 밤에만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신과 함께 걸으면서,사원에 예배를 드리고 노래를 작곡하면서 보냈다.


여기 그에 일상의 걸음은 치담바람에, 춤추는 시바의 신전에 있었다. 치담바람은 타밀어로 틸라이(Thillai)라고 불리며, 아주 고대 신전으로 A.D. 7세기에 살았던 성인 마티카 바차하가 그것을 ‘고대의 틸라이’라고 언급하였다.


타밀 나두에 다섯 신전은 상징적으로 다섯 요소(흙, 물, 불, 공기, 에테르)를 나타나는데, 치담바람은 에테르의 나타남을 대표한다, 신 시바의 가장 미묘한 나타남이다. 트리치 근처에 칼라쉬리는 공기를 표현하며, 띠루바나말라이는 불을, 트리치 근처에 띠루바마이카오일리는 물을 그리고 칸치치푸치암 또는 띠루바러는 흙을 대표한다.


분명히 모순된 말(또는 힌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 설해졌을 수도 있으며, 여기에서 명백해진다. 벌랄러가 유아였을 때, 전설에 의하면, 치담바람에서 신 시바의 은총을 받는다. 그의 소년시절에 그는 마드라스에 칸다스와미 사원의 신, 무루간(칸다 또는 샨무간 또는 수브라만야)의 은총을 받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지고의 신과 다양한 차원으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남에 대한 찬양으로 노래들을 작곡한다.


이것은 벌랄러의 추종자들과 숭배자 모두에게 알려져 있으며, 상반되게 보이거나 어떤 문제나 혼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힌두교의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에, 아마도 모든 힌두교인들은 어떤 가르침이나 입회 없이 그들 안에 이미 ‘신은 하나이다’가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나 이미지로 접근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형상 없이 접근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 신들은 한 그룹의 은하계를 다스리며, 오직 완전한 아룻 페룸 조띠 (Arut Perum Jothi)만이모든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타밀 스승은 선언한다:

당신이 예배하는 신이 무엇이든지, 오직 그 형식으로만 당신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절대적인 형태인 빛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카룬구지에 머무르는 동안에, 벌랄러는 브리다차람, 띠루반나말라이 그리고 띠루바디하이 같은 다른 신전들을 방문하며, 그 신들을 찬양하면서 노래들을 작곡한다. 그러나 카룬구지에 가장 가까이 머무르면서, 그는 거의 날마다 치담바람에 존경(경의)를 나타냈다.

치담바람에 신 나타라자(시바)의 앞에서 그는 회상한다.:

저는 제가 아이였었던 그 멀리 있는 날에 당신의 은총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회상 속에서, 저는 나타리자의 앞에 떨어져 서있었고, ‘눈물로, 궁금해하면서’ 어떤 나의 선한 행동이 이 은혜를 낳았는지를, 제 안에 당신의 이 뜻, 당신으로부터의 이 약속의 부름. 그것이 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저는 거의 말할 뻔 했습니다, “그날이 왔습니다, 오-늘 입니다,
당신이 저에게 경탄할만한 것과 기적을 행하도록 은총의 빛으로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이여, 제가 말하기 전에, 당신이 하셨습니다.

그는 치담바람에서 신으로부터 직접 은총의 통고를 받았음을 주장한다:

신이시여, 틸라이에서 저에게 말을 걸었던 나의 스승이여, 제가 당신의 내밀한 성소 앞에 서 있을 때, 저에게 말하면서, ‘우리의 은총은 지금부터 너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힘은 너의 것이다, 너는 우리의 은총으로 태어났고 그것과 같다.
너의 미세한, 인과의, 영적인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을 택하라, 기쁨 속에 살아라.
너는 나에게 전달되었고, 그리고 너는 나와 함께 머무를 것이다.’
그래서 저를 축복해 주시면서, 위대한 신의축복,
당신은 당신의 빛을 보여주셨고
저는 그것에 의하여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Lord, my Master who spoke to me in Thillai, as I stoodbefore Your
sanctum of secrecy, telling me, ‘Our grace is yours fromnow on.
Henceforth all powers are yours, born from Our grace andequal to it.
Choose as you please your body, subtle, causal orspiritual, and live in joy.
You have passed into me, and so you shall remain withme.’
So blessing me, great God of Bliss, You showed
Your light that I may rise thereby.

그가 신 니타라자에 대하여 불렀던 노래들은 아주 많고 다양하여,그것으로부터 대표적인 예를 고르는 것은 어렵다. 다음의 노래는 그 이유의 예이며, 오늘 날 널리 불려지고 있다:

신성의 댄서, 모두의 환희를 위해서 춤을 추는,
오 기쁨, 배운 자와 배운지 않는 자의,
시야, 보는 자와 눈먼 자의
후원자, 전능한 자와 약한 자의
오 지능, 탐구자와 만족을 구하는 자의
중간의 감각, 악과 선의
관리자, 신성한 자와 귀신들린 자의
제 노래의 화환을 쓰는 것을 기뻐해주세요.

Divine Dancer who dances for the bliss of all,
O Joy of the learned and the unlearned,
Sight of the seer and the blind,
Support of the mighty and the weak,
O Intelligence of the seeker and the complacent,
The Middle Sense between evil and good,
Dispenser of the divine and the demoniac
Be pleased to wear the garland of my song.

신성한 댄서의 의미를 다시 상기해보자,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서 춤추는 불꽃 또는 인과의 불이다.
우리의 심장안에 그 불꽃이 춤추기 시작할 때, 모든 존재는 그것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