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지독한 아픔의 끝에는 ‘내면아이’가 있다. – 내면아이와의 대화 1일차. [5/31]

빛몸 2023. 3. 10. 20:21

[대화록 회고]

4~5월의 후반부까지는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계속 지치는 느낌이 들었고 다시 탈진이 온 상태였습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도망치냐?’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그래, 충분히 열심히 했는지 쉬어도 되지’라고 생각이 계속 대립했습니다.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휴식을 취했지만 소용없었고 머리 속을 뒤엉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내면아이’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에 접했습니다. 어쩌면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나눔이 이토록 힘든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면아이에게 대화를 청했습니다.

 

그간 제 안의 마음과 대화를 나눠본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내면아이에게 대화를 요청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개념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으니까요. 그저 어떤 말을 하는지 곰곰이 듣다가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이토록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첫 날은 완전히 토라진 내면아이를 보게 되었고, 토라진 아이의 이야기를 듣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5월 31일자에 느꼈던 것과 내면아이와의 대화록을 보여드립니다.


 

[5/31의 느낌]

주말 내내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아니 그냥 정신을 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들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주지육림과 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가슴 속에서 계속 아픔이 느껴지고, 아무리 잠을 자고 게임하고 TV 프로그램을 봐도 이 아픔을 치유할 수 없었다.

 

‘또 시작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감당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결국 어제는 내내 게임만 했고, 오늘 아침에도 회사에 가서 게임을 했다.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팠다.

무엇 때문에 이랬는지 잘 몰랐다.

그러다 문득 오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면아이를 바라봐야 하겠다’고 말이다.

마음 속에서 마치 뒤엉켜 있는 듯한 모습 안을 살펴보라는 의미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나 보다.

 

내면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대화를 청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방법을 몰랐다.

그저 내 느낌에 따라 했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나 다친 내면아이를 보게 되었다.

[5/31의 내면아이와의 대화]

 

나: 내면아이야?

내면아이: (토라져서) 흥!

나: (상처들을 바라보며) 세상에, 이 상처들! 괜찮니? 많이 아파 보여.

 

내면아이: (내가 건드리려고 하자) 건드리지 마!!! 싫어!!

나: (놀라서) 그래.. 미안해.

내면아이: (화나서) 뭐가 미안해? 니가 미안한 게 있어?

 

나: 네가 이렇게까지 상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어.

내면아이: 그래, 나 힘들어! 미치겠어! 너는 나를 그렇게나 이용해 먹고 버리고, 계속 그러잖아! 이 상처들 너 때문에 생겼어.

나: (충격을 먹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너를 이용하다니? 난 그런 적이…

내면아이: 어제도 그랬잖아!

 

나: 무슨 얘기니? 잘 이해가 안 되.

내면아이: 어제, 왜 게임 했어?

나: 그건 아무리 쉬어도 힘들고, 지금껏 고생했으니까 내가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랬어.

내면아이: 근데 나는 왜 안 봤어? 그래. 너는 게임 하면서 나 피하잖아. 현실에서 노력하면 뭐해? 정작 나는 너무 아픈데.

 

나: (침묵을 지키다가) 그래. 그러고 보니 정말 너를 피했구나.

내면아이: 그게 얼마나 상처 깊은 줄 알아? 너 여지껏 30년 간 이런 식으로 나한테 상처 입혔어!

나: (울먹이며) 그래.. 그랬구나. 나 슬럼프인줄 알았고,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괜찮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나 보네.

내면아이: 이제 알았어?

나: 미안해. 이제 알아서. 나 지난 주부터 힘이 부치는 게 느껴졌어. 일을 잘 하고 싶어서 정말 많이 노력했고, 지금도 그랬거든. 근데 힘에 부쳐서 내가 가슴이 아프다고 느낀 게 아니었구나.

내면아이: 나는?

나: 무슨 의미야?

내면아이: 나 못난 아이인 걸 아니까, 무시했던 거잖아!

 

나: (입을 굳게 다물다)…

내면아이: 또 상처를 줬어! 왜 이렇게 나를 안 아껴주냐고!!!

나: (결국 울음을 쏟아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가 그렇게까지 아파하는 줄 정말 몰랐어. 너에게 만든 모든 상처는 나 때문이야. 너를 그간 만났어야 하는데, 미안해. 아픈 것을 알고 있지만, 괜찮다면 너를 안아줘도 되겠니?.

내면아이: (저항하며) 싫어! 안지 마! 아파! 아아악!

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이런 상처를 나게 하고, 안아준다고 하는 거. 미안해. 병 주고 약 줘서. 그래도 그간 네가 상처 입었어도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내면아이: 아파… 너무 아파…

나: (안아주며) 미안해. 그간 너무 아팠지? 그 아픔 다 수용하고 항복할게. 처음에는 더 아플 수 있어도 나중에는 깨끗하게 나을 거야.

내면아이: 정말? 나 상처투성이인데? 다 나을 수 있다고?

나: 해 볼게. 네가 못난 아이인 거랑 관계없이 내가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야. 네 덕분에 내가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너를 바라볼 수 있잖아? 고마워.

내면아이: 나 못났는데? 정말 그런 거야?

나: 그래. 못났든 말든 상관없어. 너의 상처 하나씩 보듬어 나아가보자.

 

[5/31의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내면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음 한 켠이 매우 편안해졌다.

못난 나 (어린아이)를 바라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하고 나서야 온전히 마음 속에서 느꼈던 무거움이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진실로 내가 봐야 할 것을 놓치고 있다가, 이제서야 제대로 마주보게 된 느낌이다.

무의식의 정화 중 내면아이의 정화가 이런 느낌일 수 있겠다.

내가 상처를 만들었으니 상처를 치유하는 것 또한 내 몫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