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남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보되 판단하지는 마라.

빛몸 2018. 10. 17. 08:48





예수는 그들의 상태가 불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치료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 영혼들이 자기 과정의 일부로서 치료를 요청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는 그 과정의 완벽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영혼이 뜻하는 바를 인정하고 이해했다.
만일 예수가 정신의 병이든 육체의 병이든 모든 질병이 불완전을 나타낸다고 느꼈다면,
그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그냥 한꺼번에 치료하지 않았을까?
너는 예수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의심하느냐?


아뇨. 예수는 능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좋다. 그런데 네 정신은 여전히, 왜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그는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고통 받게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치료해주었을까, 몹시 알고 싶어하는군.
그렇다면 왜 신은 그것이 어떤 고통이든 항상 고통을 묵인하는가?
과거에도 줄곧 제기되어온 이 질문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그 과정 속에 완벽함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무릇 삶이란 선택에서 비롯된다.
선택에 간섭하거나 선택을 문제삼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선택을 비난하는 건 특히나 더 적절하지 못하다.

적절한 쪽은 그 선택을 관찰하고, 그런 다음 그 영혼이 좀더 고상한 선택을 추구하고
더 고상한 선택을 내리고자 할 때, 그것을 도와줄 뭔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보되 판단하지는 마라.
지금 이순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걸 그들이 깨닫게 해주라.
그러나 그들이 더 새로운 선택, 또 다른 선택, 즉 더 고상한 선택을 하려는 때가 오면
기꺼이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옆에 서 있도록 하라.

타인들의 영혼과 깊이 교감하라.
그러면 너는 그 영혼들의 목적, 그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이 치료해준 사람들과, 자신이 그 삶에 접촉한 모든 이들과 함께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는 자기에게 온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내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 모두를 치료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구 치료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했다면 그건 우주의 성스러운 법칙을 모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즉 모든 영혼이 제 갈 길을 가게 하라는 법칙을.


- 신과 나눈 이야기




출처 : 파라다이스 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