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과 함께 수련한 첫해에는 흔히 '작고 고요한 내면의 소리‘라고 불리는 내적 가이드를 따르는 법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이 내면의 소리가 말이라기보다는 느낌으로 오며, 이것을 언어로 전환시키는 것은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의 정확도는 마음이 이전부터 프로그래밍 되어온 개념, 욕구, 반응으로부터 얼마나 정화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내면의 신적 현존은 언제나 기능하고 있으며, 가장 사소한 단계에서조차 우리의 삶을 가이드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적 현존을 온전히 감지할 수 있을 때는 오직 마음이 고요할 때, 애착과 혐오라는 이원성에서 자유로워졌을 때밖에 없다.
내적 멈춤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면, 그리고 (대사들의 의지와 하나인) 신적 자아의 높은 의지에 순종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낮은 마음, 즉 에고적 마음에서 나오는 재잘거림만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위빠사나를 통해 이 마음의 멈춤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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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식을 영원한 현재에 멈추게 해주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위빠사나다.
이 기본적인 내적 자각의 단계를 성취하고 난 후에야 나는《베일을 벗은 미스터리》에서 세인트 저메인이 언급한 명상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 명상법은 가슴에 있는 빛을 심상화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 지각 있는 존재들을 축복하는 태양이 될 때까지 그 빛을 온몸 의 세포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명상을 마칠 때는 자신의 모든 활동 속에서 그 빛의 주권과 권능을 현현시키기 위한 내적 확언을 반복한다. 그리고 감사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일상의 깨어 있는 마음과 이 깊은 명상의 상태가 실제로 하나임을 깨닫게 되면 가슴에서 나오는 내적 가이드를 실수 없이 좀더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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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진정한 영적 전사로서의 덕성을 배우고 있었다. 이 덕성은 공격성이나 미리 짜놓은 계획에 따른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멈추는 공간 속에서 흔들림 없이 머무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기만이라는 적을 베기 위해 분별하는 지혜의 검을 휘두르는 것이 영적 전사로서의 덕성이었다.
이렇게 미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수행자는 어떠한 망설임, 흔들 림, 의구심도 없이 그저 내적 비전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갈 용기를 내야 한다. 이러한 내적 가이드는 종종 내게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작스레 다가왔다. 때로는 이 내적 가이드가 느낌을 동반한 어떤 미묘한 생각에서 시작될 때도 있었는데, 이런 생각은 마침내 명확한 비전이 형성될 정도로 강렬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떤 비전을 따라갈 용기를 내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 전에 먼저 내 의식이 지닌 선입견, 두려움, 의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비전이 점차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렸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이는 그 비전이 내 낮은 에고적 자아에서 나온 비전이거나 다른 사람의 상념을 나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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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은둔처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마법의 현존》에 나온 원자 가속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왕좌같이 생긴 그 장치는 개인의 진동수를 상승 상태까지 올려줄 수 있었다. 세인트 저메인과 다른 두 대사들은 은둔처에 도착한 나를 맞이해주면서, 어떤 설명이나 준비도 없이 바로 순금제로 보이는 그 왕좌로 나를 안내 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모든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편히 쉬라. 그리고 당신 존재의 중심으로 의식을 돌리라 그 지시를 따른 나는 명상 중에 자주 연습했던 공(emptiness) 상태로 들어갔다. 황홀한 축복의 에너지가 내 몸을 지나가면서 모든 세포들을 생명의 빛으로 일깨웠다.
나는 내 뒤에 세인트 저메인이 서 있으며, 그의 양옆에는 백색 로브를 입고 있는 이름 모를 두 대사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간적인 자아에 대한 나의 집착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재하신 신적 현존에 의식을 집중하라.' 또다시 내적인 지시가 주어졌다. 의식이 나 자신의 본질로 흡수될수록 이 전기적인 생명의 빛은 더욱더 강렬해졌고, 나는 내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을 느 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선언 중 가장 강력한 선언을 하라.'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바깥세상에서 듣기에는 자기본위적이고 신성 모독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내적으로 말해진 이 선언은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내 의식을 신적 현존에 집중하자 나는 그 현존 자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가벼워져서 마침내는 왕좌에서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내 몸속에 저장되어 있던 잠재의식적 기억들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마치 검은 얼룩처럼 이 상승하는 빛의 형태에서 떨어져 날아가고 있었고, 대사들이 집중해서 증가시키고 있는 빛에 의해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다.
내 존재의 진동수가 더 높이 올라가고 이 놀라운 에너지의 흐름 이 증가함에 따라, 한계 지어졌던 모든 것들이 녹아내렸다. 나는 내 상위 자아와 하나로 합쳐졌다. 오직 빛 의식의 자각만이, 그리고 다음과 같은 깨달음만이 남았다.
나는 하나님이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내가 여전히 물리적인 차원에 존재 하고 있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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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천국으로 들어갔지만, 내게 완전한 자유를 줬다고 여겼던 그 대사들에 의해 다시 한번 미망의 인간세계로 되돌려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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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몸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과 똑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이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면서 내 이마 중앙에 있는 청백색 빛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의식을 그곳에 집중하자 내 내적 비전이 확장되었고, 마음속의 이 새로운 화면 위에는 숫자들이 뜨기 시작했다.
각각의 숫자에는 가장 작은 원자 구성 입자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몇 가지 측면들을 보여주는 높은 지식이 담겨 있었다 이 모는 것은 하나의 여러 측면이었다. 나는 이런 지식들을 담고 있는 지혜가 마치 컴퓨터 파일처럼 내 마음으로 다운로드되고 있는 것을 넋을 잃은 채 보고 있었다.
창조의 기하학적 디자인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 마치 내 전시안의 조리개를 통해 투사된 영화처럼 말이다. 그 디자인은 창조가 어떻게 하여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수학적 완벽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는 이 우주의 비밀들은 내가 지금까지 상상 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놀라웠다. 나는 예술, 과학, 영성이 '하나' 의 여러 표현임을 보았다. - 이 하나는 존재 기반에 깔려 있는 의식의 기하학적 무늬, 통일장이었다. 물질세계는 그저 기괴한 환상에 불과했다. 물질세계는 우주적 지성의 신성한 음악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고, 이것 없이는 창조도 멈추게 될 것이었다.
비전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식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창조계 안에 나타나는 유한함 속에서 매 순간 이 무한성을 자각할 수 있음을, 신이 있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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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탄 나는 동쪽으로 달렸다. 알 수 없는 것마저도 그저 받아들이니 극도의 행복감이 느껴졌다. 이것은 '상념의 멈춤‘, '계획 없음'이라는 텅 빈 지복 상태였다. 비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모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 나는 완전무결한 존재의 지복으로 나를 채워주는 이 신적 현존을 믿었다.
'그래, 이것이 깨달음이구나!' 나는 새로운 차원의 자각은 그다음 단계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렇게 생각했다 사실, 다음 단계의 자각을 이루게 되면 그것 역시 궁극의 깨달음처럼 보일 것이었다.
아무튼 그 당시 나는 확장된 의식, 그러니까 생각이나 판단 기준이 없는 의식의 지복을 느끼면서 목적지도 없이 뻥 뚫린 광활한 평야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더없이 행복한 나에게는 아무런 할 일도 없었다. 오직 존재만이 있었다.
나는 이 장대한 실재를 맛보면서 내가 어떤 궁극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지평선이 점점 더 넓게 펼쳐지는 것을 보자, 의식에는 어떤 경계도, 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목적지에 이르면 저 멀리서 또 다른 목적지가 드러났다. 심지어 '깨달음'이라는 개념도 환상이다, 이름 붙이는 행위 그 자체가 의식의 무한성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스터의 제자 p258~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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