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 대사님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질 수 있을 때 변형이 일어난다

빛몸 2019. 10. 15. 13:33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질 수 있을 때

다른 이가 그대를 부를 때를 준비하라!
그리고 그 부름에 온몸으로 응답하라.

책임감이란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지,
의무감을 뜻하지는 않는다.

책임감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응답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사랑이란 응답이다!
상대가 부를 때, 그대는 준비되어 있다.
상대가 그대를 초대하면, 그대는 그에게 들어간다.

하지만 초대받지 않았을 때,
그대는 상대를 방해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노래부르면 그대도 응답의 노래를 부르고,
상대가 손을 내밀면 깊은 응답으로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책임감이란 이렇듯 응답하기 위해 열려 있고 준비하는 자세다.

누군가 부르는데도 그대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대의 마음이 여전히 닫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대를 사랑하고자 해도 그대가 도와주지 않고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오히려 장벽을 쌓는 것이다.

의식적이 되도록 하라.
이 것 이야말로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은 어렵고도 험난하다.

즉흥적이기는 쉽다.
어떠한 지적 활동도 필요치 않기 때문에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의식적이 된다는 것은 모든 책임을 자신의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책임질 수 있는 것 이야말로 불성(佛性)을 향한 첫걸음인 셈이다.

그대가 잠들어 있다면,
새들이 계속 노래하고 있는데도 듣지 못할 것이며,
꽃이 만개했는데도 그 아름다움과 향기와 희열을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그대의 존재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깨어 있고 의식적이 된다는 뜻이다.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한마음(mindful)'이 된다는 뜻이다.

가능한 한 최대의 각성 상태에서 행동하라.
길을 걷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사소한 일에서 조차 기계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완전한 각성 상태에서 행동하라.

조금씩 조금씩 작은 행동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차츰차츰 그 빛을 발하는 행동들이
그대의 내면에 쌓여가면서 마침내 폭발한다.

씨앗은 활짝 피었고,
잠재적인 가능성은 현실화되었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씨앗이 아니라 연꽃이다.

그것도 1천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금빛 찬란한 연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축복의 순간이다.
붓다는 이를 '열반'이라 부른다.

일단 도달하면,
이제는 더 이상 성취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다.
그대는 휴식할 수 있고, 편안히 안식할 수 있다. 여행은 끝났다.

엄청난 기쁨이 그 순간에 일어나고,
위대한 엑스터시가 태어난다.
하지만 그대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전적인 책임을 져라.
설사 그 삶이 추할지라도 책임을 느끼고,
비탄만이 있을지라도 그 삶에 책임을 져라.

물론 처음에는 '나 자신이 이 지옥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처음에만 그럴 뿐이다.

오래지 않아서 변형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지옥이 나 자신의 책임이라면 천국도 내가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토록 엄청난 비탄을 나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면
반대로 온갖 환희도 창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책임감은 자유를 초래하고 창조성을 가져다준다.

현재의 그대가 무엇이든 간에 모두 그대가 뿌린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대는 비로소 그대를 둘러싼 외적 요인과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 모든 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멋진 춤을 출 수도 있으며,
축복의 삶을 살면서 인생을 끊임없이 축제로 보낼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신이란 개체에 대한 위대한 심판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질 수 있을 때만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오쇼라즈니쉬


출처 : 레드아우라의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