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진동수를 갖고 있는 아주 강력한 대우주의 진동입니다. 웰든씨가 신비에 취한 것을 모두 아시지요. 하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명심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 이야기를 진실로 여기고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면 더 발랄 게 없겠습니다. 절대 상투적인 말로 치부해버리지 마십시오. 배울 자세가 되어 있다면 제 말을, 상념을 신적인 원리에 일치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느 한 점에 생각을 모으는 훈련'을 할 때 제가 하는 이 말을 생각을 집중하는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내재하는 지고한 원리로 안다면, 그리고 그 원리가 여러분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하느님'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할수록 유익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거듭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이라는 말은 아무리 자주 사용해도 지나침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기를 관통해서 흐르는 창조 원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원리에 생각을 집중하여 활력을 불어넣으십시오. 그리하여 창조원리가 보다 더 역동적인 힘을 갖고 흘러나가도록 하십시오. 창조원리는 외부 세계에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여러분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존재의 온 힘을 거기에 실어서, 창조원리가 더 큰 위력을 가지고 외부세계로 흘러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더 큰 힘으로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 창조원리의 힘을 증폭시키는 매개체입니다. 한 사람일지라도 완전한 지배력을 가지고 창조원리의 힘을 발산하면 그로써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럴진대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창조원리의 힘을 증폭시켜 방출한다면 얼마나 큰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하느님이 여러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적인 대원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는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그만큼 육체의 진동이 높아집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진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적인 진동에 감응하는데, 신적인 진동이란 곧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의미를 확실히 알고 '하느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 말을 사용하기 이전과 사용하고 난 이후의 육체의 진동이 달라집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명심하시고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원하기만 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이 곧 하느님의 생각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 곧 하느님의 그리스도 말씀입니다. 인간 예수는 하느님의 순수한 빛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이 점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라는 말이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이라는 말이 표현될 때 생겨나는 진동때문입니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진동수를 갖고 있는 아주 강력한 대우주의 진동입니다. 이 진동은 대우주 광선을 타고 와서 방사형의 고밀도 진동장을 형성합니다. 이 진동장은 만물을 포용하고 있으며, 만물 속에 침투되어 있습니다. 만물이 이 진동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지요. '하느님'이라는 말이 형성하는 이 진동장이 모든 에너지의 활동을 조정하며, 빛과 생명은 이 진동을 타고 운반되어 옵니다. 우리는 방사형의 진동장 배후에서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지성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 즉 지배하는 지성은 방사형의 진동장을 통해 만물 안에 침투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사형의 진동장으로부터 빛과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사람이 이 진동을 받아들이면 육체와 진동이 동화되어 진동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그의 육체는 빛의 진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몸에서 빛이 발합니다. 그 자신이 하느님의 진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진동장에 있는 사람은 낮은 차원의 진동장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상이 '하느님'이라는 말이 어째서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성경의 영적인 의미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문자적인 의미만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성경이 가지고 있는 힘에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영적인 진동이 그렇게 몰지각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진동을 소멸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하느님' 이라는 말을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그 진동의 힘이 그들의 몰지각함을 보충해주고도 남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진동의 힘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웃고 비평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어째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악' 이라는 말을 완전히 제압하고 지배할 수 있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라는 지고한 진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 자체가 힘이라는 사실을 알 때,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여러분의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놓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어떤 곳에 가고 싶은데도 여전히 이곳에 붙들어 두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을 제한적으로 사용한 결과입니다. 비본질적인 자아가 만들어낸 제한을 버리고, 자신이 하느님의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진동과 능력이 자신과 하나라고 선언하십시오. 자신이 곧 하느님의 진동임을 분명히 하는 순간 여러분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알아야 하고 아는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행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생길 때까지 근원자 또는 원리를 사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보내는 진동이 보다 높은 진동장에 조율되어 있을 때에는 낮은 진동장 중에 있는 사람 눈에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의 육체가 빛의 속도로 진동한다면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의 눈에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진동중에 온전히 거한다면 여러분의 몸은 순수한 생명이 됩니다. 빛과 생명은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진동 가운데에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인 것입니다. 고귀한 삶을 살며 귀한 업적을 이루어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진동을 통해 그같이 살았고 또 하느님의 진동을 통해 그러한 일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십자사상에서 한 마지막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완전히 잘못된 번역입니다. 제가 실제로 한 말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당신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또다른 누구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신께로 온 것 같이 당신의 모든 자녀들도 당신께 나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제가 산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결국 저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도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당신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가 되면 지성이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게 됩니다. 그때 지성이 있는 에너지가 저를 완전히 감싸게 되므로 육체가 파괴되고 생명요소가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입자들에게 분리된다고 해도 지성적인 생명원리가 그것들을 다시 결합시켜 원래의 모습대로 육체를 재생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제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셨을 것입니다. 상처를 입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 원리를 해치고자 했던 사람들뿐입니다. 저의 경우는 온 인류가 따라야 할 대원리의 법칙이 실현된 하나의 예입니다. 저를 따라 하느님의 그리스도가 되는 자는 인간의 이상인 불멸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육체는 파괴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육체는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진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저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 것은 육체적인 인간이 육체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최종적인 것을 저에게 행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육체에 가할 수 있는 마지막 제약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저들은 시체를 무덤 속에 놓고 그 입구를 커다란 돌로 막은 다음 철저하기 봉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체적인 제약이 완전무결하게 이루어졌지만 바로 그때 불멸성 또한 완전해졌습니다.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이라도 불멸성을 획득한 인간의 몸을 가두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바위를 녹여서 무덤 속에 갇힌 육체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권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출처 :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을 찾아서/베어드 T. 스폴딩 http://blog.daum.net/heechul578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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