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허 바바 대사님

영적지혜와 깨달음/메허바바(인도 영적스승들) - 메허바바

빛몸 2019. 1. 1. 18:02



나는 태초의 이다.

내가 내 자신을 이라고 말하는 것은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이라고 말하는 것을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내게 있어서,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모독이다.

 

메허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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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허바바는 1894년에 인도의 푸나에서 태어나, 1969년에 입적한 인도의 영적스승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0대 후반의 기묘한 체험이 계기가 되어, 정신적인 길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어느날 그는 대학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른바 파키르 - 수피 수행자 - 로 알려진 어느 노파로부터 얼굴에 키스를 받고, 금속이 자석에 빨려들 듯 노파에게 이끌려 매일 밤 그녀의 집을 찾아 영적인 지도를 받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밤, 그녀가 "단 한순간에 참된 자아()의 한 없이 지복에 가득찬 표현을 깨닫게 해주었다." 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니르비갈파 사마디"로 불리우는 "지복의 황홀경"을 맞보았으며, 집으로 돌아와 몇달간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는 그 후 수개월간을 주위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으며, 부모는 그가 미친것으로 생각해 의사에게 보였지만, 도무지 손을 쓸수가 없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수개월동안, 그는 황홀한 상태에서 일체가 되는 "니르비갈파 사마디" 상태에 있었으며, 전 우주와 모든 단계의 의식들이 명확하게 인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지복의 정신상태에서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지상계로의 의식의 회귀는 그에게 있어서는 단말마의 고통과 가까운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식의 회귀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그는 몇시간이고, 벽이나 창에 머리를 들이박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리얼리티에는 그러한 고통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한 없는 지복이다. 고통은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한 환상의 영역에서는 역시 고통이다. 영적스승(노파 - 바바쟌)은 나의 리얼리티를 확립하게 해 주었다. 그때문에 나의 리얼리티는 환상에 침범당하지는 않았지만, 환상과 결합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루말할수 없는 고통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사랑만 있으면 신을 파악할 수 있다" 고 메허바바는 말한다. 진정한 자기 헌신이란, 그대나 내가 자신을 바람직하게 하려는 모든 시도, 가장 정신적인 행위조차도 그만둘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것을 던져버리고 오로지 사랑으로서 헌신하는 것을 "박티" 라고 한다. 반대로 "지혜로운 통찰"로서 ""께 다가가려고 시도하는 것을 "즈나니" 라고 한다.

 

"박티"의 길을 가든, "즈나니"의 길을 가든, 결국은 모든 길이 께로 통하게 될 것이다.

마치 헤르만 헤세가 쓴 " 사랑"에 나오는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처럼.- 헤르만 헤세는 "칼 구스타프 융"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영적 성장을 위한 길을 찾는 현인 중 하나였다.

 

""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규정되어질 수 없는 존재 아닌 존재이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인 동시에 그 모든것을 뛰어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메허바바는 바로 "사랑의 길 - 박티"를 통해 께로 다가가려 했던 영적스승이었던 것이다.

 

" 사랑에 의해 포착되는 것이다." 라는 말은, 내가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쁘게 던져 버렸을 때, 그 행위에 대해 무엇인가가, 나를 받아들이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던져준 것 같다는 의미이다.

 

그 무엇이란, , 진정한 마음, 진정한 세계이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타당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열린 상태에 접근하거나, 도달하였던 것이다.

 

인간 예수그리스도에게는 친근감을 가질 수 있고,슬픔이라는 무거운 짐을 거기에다 던지고, 헌신할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기르기 위해서는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힌두교에서 수없이 많은 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인간들이 헌신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타입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

 

유아기적 단계의 정신적 수준에 있는 인류를 영적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존재하는 무수한 들과 상징과 절차들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우상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며, 잘못된 가르침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가르침, 수승한 지혜는 어느 종교나 종파를 막론하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오직 하나의 최고원리로서 존재하고 계시듯,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르침과 종교는 올바른 길로 인류를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적스승들은 그들이 속한 종교나 종파, 민족과 나라에 관련없이 모두 이러한 진실들을 잘 이해하여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잘 이해할수 없기에,오해와 편견과 불신이 싹트고 급기야는 종교전쟁과 불미스러운 갖가지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知力 차이는 밤과 낮의 차이와 비슷하다.양자는 상호관계 속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다른 것이다. 사랑이란 진리를 깨달을수 있는 진정한 지성이며, 知力 이원성이라는 무지로부터 생성되어이원성이라는 무지 그 자체를 알기에 적합한 도구인 것이다.

 

해가 뜨면 밤은 낮으로 바뀐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현현하면, 알지 못하는 것 (무지)은 의식을 가지고 아는 것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知的으로 예리한 사람과 知性 결여된 사람에게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양자 모두 동일하게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사랑을 좌우하는 요소는 기지나 현명함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생명을 던질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없는 가에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체나 에너지나 머리를 전부 벗어 던져버리고, 사랑하는 자의 발밑에 엎드려 하나의 티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 사람이 숨을 들이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이 사랑하는 자의 발 아래의 티끌은, 언젠가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하여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 빛이 되어 빛과 하나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없는 환상의 포로가 되어 간다. 현실적인 존재는  뿐이다. 그외에 그대가 보거나 느끼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져갈 無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 없는 지식, , 지복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누구에게도 신의 지복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왜 지금 나에게 신을 깨닫게 해주지 않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당신이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당신의 이웃이어도, 아주 평범한 사람이어도, 또는 저 나무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이어도, 저 돌이라도 괜찮지 않은가.

 

모두 형태만 다를 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 속에 존재하며,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나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허위를 사라지게 하고, 진정한 자신인 아트만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단순한 지적인 이해가 당신 곁에 신을 불러 주는 것이 아니다. 신을 부르는 것은 의문이 아니다. 사랑이다! 의문은 분리와 자존심을 기른다.

 

때문에 물음을 던질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박티(헌신을 통한 진리의 길)

 

당신의 인생이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비추어 낸다면, 완벽한 스승의 포옹만으로도 충분히 혼에 생명이 깃들게 된다. 태초의 존재인 내가 그대를 포옹하면, 그대 속에 무엇인가가 싹을 틔워, 천천히 성장해 갈 것이다.

 

내가 심는 것은 사랑의 씨앗이다.

 

씨앗이 열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는 긴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목표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넘어야 할 시간과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지 그대 자신이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뿐이다.

 

그대는 이미 이며, 가없는 존재이다.

 

 

 

 

 

 

- 메허바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