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타아 대사님

고통,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

빛몸 2018. 9. 16. 18:53




고통이라는 것은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입니다.



오늘날 당신네의 문화에선 느낌, 감정, 상상력 같은 것을 경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당신의 상상력은 당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입니다.
가장 위대한 창조의 힘입니다.

당신이란 존재가 본래 창조적이지요.
당신의 물리적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
모든 분자가 창조적이고 무한한 힘을 지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여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상상력은 당신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느낌 또한 당신을 시간과 공간 너머로 데려갑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성적 에너지를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줍니다.
받아들이고, 느끼고 직관적이게 합니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난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싶어. 그냥 느낌이 그래.”

여자들이 그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비웃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으며, 지성적이지도 못하고, 말도 안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여자들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그렇죠?

인류는 직감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점차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직감을 따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직감은 아주 순식간에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일상사를 쫓느라 바쁘기만 한데,
여러 가지 결정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어느 짧은 순간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안 돼’ 라는 말일 수도 있고,
‘맞아, 이걸 해’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바쁘고 조화된 상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소위 직감이라는 것은 여성 에너지입니다.
당신들 모두는 내면의 속삭임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직감과 만나기 위해서는, 전에도 말하였지만
자신의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몸에 어떠한 불편이 오는 것은 당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느낌을 두려워합니다.
인류는 고통이라 불리는 것에,
절망이라 불리는 것에 꽁꽁 묶여 있습니다.
탄생의 순간부터,
최초로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고뇌를 경험한 순간부터,
당신들은 각자 자기 주변에 불가항력이라는 장벽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당신들 모두는 또 다시 상처 받을까 봐 두려운 겁니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실망과 슬픔과 고통을
당신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거기에 단련된 당신들은
그 때문에 고통과 느낌을 혼동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여, 고통은 느낌이 아닙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고통은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입니다.

 

 

 

프타아

가슴이 노래부르게 하라. / 쟈니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