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창조근원의 번뇌 : 제 8 장 - 공포 (恐怖:Horror)

빛몸 2023. 10. 22. 06:47

공포 (恐怖:Horror)

 

 

 

여덟 번째는 ‘공포(恐怖:horror)’ 란다.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면 극한의 ‘공포(恐怖)’가 너희들을 찾아온단다. 누군가가 너희들의 생명을 노리거나 위해(危害)를 가해온다면 바로 너희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두려움인데, 이것이 극대화되면 ‘공포’로 변형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란다. 

 

 

미지의 누군가가 장소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너희들이 위험에 처해있다면 느끼게 되는 것인데, 너희들은 영화나 게임, 체험의 현장에서 ‘공포’를 통한 짜릿한 쾌감을 느끼려고 한단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나 아니면 놀이시설 에서 너희들은 극한 체험을 하며 즐기고 있는데, 이것이 테러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쟁의 현장이라면 너희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되며 그것을 통해 ‘공포(恐怖)’를 경험하는 것이란다. 

 

 

물질화가 극명하게 일어나면서 너희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현장들을 자주 보게 되고, 또 그런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생명을 담보로 한 일들을 하고 있단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두 번의 대형 전쟁을 치렀으며, 작은 규모의 전쟁도 수없이 치렀단다. 많은 생명들이 그곳에서 사라졌으며, ‘공포(恐怖)’의 기운들이 많이 발생하였단다. 

 

 

찰나지간에 벌어지는 사고나 재난으로 인한 죽음은 그렇게 큰 두려움과 공포를 조성하지 않지만 예고된 재난과 사고현장의 죽음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너희들의 심리와 감정선을 건드려서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조성하고 만단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고를 기다리는 것이 너희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이런 현상을 불러오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그런 영화와 소리를 통하여 대리 체험들을 하게 되고, 긴장감에 의해 분비되는 호르몬을 통하여 자극을 즐기게 되는 것이란다. 신경물질이 분비되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하여 경직현상을 동반하고, 이완되는 과정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되며 두려움에 의한 물리적 현상들을 쾌감으로 즐기게 된 것이란다. 

 

 

그러나 너희들은 진정한 두려움에서 오는 ‘공포(危害)’를 잊기 위하여 유희의 뒤풀이쯤으로 해석하고 즐기는 것으로 꾸며 놓았다만 그런 장치와 게임들이 과연 너희들의 진실된 ‘공포(危害)’를 잊을 수 있도록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외면하고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란다. 너희들은 공룡들의 멸종을 가져왔던 혹성 충돌에 의한 대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레무리아 대륙의 침몰 현장의 비극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에 그런 것이고, 하늘을 가리고 있던 천공의 파괴로 발생한 대홍수로 인한 인류들의 대수난의 비극들을 체험하지 못하였기에 그저 놀이쯤으로 치부하여 즐기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9.11 테러를 통해 무너진 무역센터 건물을 통하여 극한의 공포를 체험했다고는 하여도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인자들이 느꼈던 공포를 직접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란다. 이것이 전체 행성에서 일어나고 전 인류들이 생생하게 느끼는 공포라면 아마 다를 것이란다. 

 

 

너희들은 1999년에 2,000년을 맞이하면서 종말론에 한 동안 휩싸여서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는데, 1999년 때에도 종교지도자들이 그것을 집단적으로 이용하여 인류들을 ‘공포(危害)’에 휩싸이게 하였단다. 종말론은 인류들을 협박하는 수준으로 비하 되었고, 특히 종교의 틀을 사칭하여 성도들과 신도들을 인질로 한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란다.

 

 

지금도 2012년 12월을 기점으로 한 종말론이 머리를 들고 있으며, 이것을 이용한 여러 단체들과 인자들에 의해 양산된 거짓된 정보들로 인류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란다. 너희들의 심리 상태를 이용한 종말론은 너희들을 극도의 두려움을 불러오게 하여 ‘공포심’을 유발 시키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존재들은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고 자신들의 물욕을 충족시키거나 자신들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득권을 이용한 파렴치한 짓거리 등을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음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단다. 

 

 

저들의 술수에 무방비 상태로 넘어가는 인류들은 더 많이 나오게 되고, 이때 발생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너희들의 의식을 다운 시키고 분리 시켜서 빛에서 어둠으로 추락시키려는 저들의 고도의 전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저들은 너희들의 심리를 이용한 기만술을 총동원하여 저들의 목적과 야욕을 충족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종말론을 이용하는 것이란다. 

 

 

너희 인류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려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시키려는 것인데, 선의의 정보들도 저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어서 분별력이 없는 너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저들은 교묘하게도 하늘의 변화와 우주의 질서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조하여 너희들에게 제공하고 있음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은 그것을 진실인양 믿으면서 저들의 꾐에 속아 너희들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끌려가고 마는 것이란다.

 

 

내면의 ‘참자아’를 찾는 것을 저들은 원치 않는단다.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조성하는 것이고 특히나 종말론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너희들의 눈과 귀를 모두 막아 너희들이 스스로 빛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며, 너희들이 그리스도나 붓다가 되는 것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는 것이란다. 

 

 

종말론을 들고 나오는 종파들은 저들의 앞잡이들이며 이용당하는 허수아비들이란다. 다니엘서나 계시록을 이용하고, 예언서나 비결서를 이용하여 인류들이 모두 멸망하게 되었으니,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을 따른다면 살 수 있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을 유포하여 너희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면서 결국엔 어둠의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란다. 

 

 

‘공포(危害)’는 이렇게 너희들의 눈과 귀를 가리게 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는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의 영들은 모두 얼어버리게 되면서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란다. 두려움은 다양한 모습으로 너희들을 시험하고 평가를 하게 되는데, 너희들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시험을 모두 망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란다. 큰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이 공부했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당당하게 시험을 치르지 못한다면 두려움이 그를 얼어붙게 할 것이고, 극도의 긴장감은 그를 ‘공포(危害)’에 휩싸이게 하여 모두 기억하지 못하게 하니, 문제들은 모두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되고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린 그는 시험을 망치고 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늘 평상시에 철저하게 시험을 준비한 학생처럼, 문제지를 받더라도 자신을 믿고 신뢰한다면 자신감은 살아나고 모든 문제들은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란다. 그러면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모두 사라지게 되고 당당하게 빛을 발하며 준비된 것을 모두 보여주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란다.




공포(危害)’는 너희들의 이러한 당당함과 준비한 모든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요소로서 이용되고 있으며 너희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모두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고, 너희들이 빛으로 깨어나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영체를 꽁꽁 얼어붙게 하여 전혀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고 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생명에 관련된 어떤 위기 상황을 접하게 되면 두려움이 생기고 뒤를 이어 공포심이 너희들을 지배하게 된단다. 죽음은 너희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장치인데, 어둠의 강한 속성 가운데 하나이면서 너희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너희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고, 얼어붙게 하여 어둠으로 추락하게 하는 역할을 한단다. 지난 과거에 너희들은 ‘공포(危害)’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조롱당하고 웃음거리로 전락되고 말았단다. 

 

 

너희들은 희곡을 만들고 소설을 써가며 찬미하고 예찬하여 ‘공포(危害)’를 극복하는 것처럼, 너희들 스스로를 최면하여 속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복한 것이 아니었단다. 너희들은 연극과 영화로서, 회화하고 미술과 음악으로 아름답게 해석하고 포장하였지만 그렇다고 완성된 것이 아니었단다. 너희들의 마음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공포(危害)’를 이기기 위한 극도의 몸부림은 있었지만 승리를 얻을 수는 없었단다.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것처럼 치부하였지만 너희들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공포(危害)’를 떼어낼 수 없었단다. 이러한 몸부림 가지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단다. 너희들은 ‘공포(危害)’의 원인을 찾지 못했으며,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낼 수 없었기에, 더욱 더 미로 속에 갇히게 되었고, 실타래만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된 것이란다. 너희들은 문제의 원인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았고, 실체가 없는 ‘공포(危害)’를 찾는데 실패하면서 더욱 힘들어 했으며, 내부에서 조차도 자신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닌, 외부의 도움을 통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하였고 그 결과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상처만을 떠안게 된 것이란다. 

 

 

‘공포(危害)’는 더욱 너희들을 압박했으며, 너희들의 숨통조차도 끊어버리게 할 정도로 기운이 확장 되었던 것이란다. 더군다나 영화나 드라마, 소설, 기타 여러 종류의 정보매체들이 쏟아내고 있는 종말론과 관련된 소식들은 더욱 너희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어서 너희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주체성마저도 쉽게 흔들리며 거짓된 정보에 동조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란다. 

 

 

너희들을 나무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흔드는 모든 요인들은 너희들의 잊어버린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는 인자들이 없고, 오히려 오해하며 자의적 해석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체성을 무너뜨리고 있음이니, 그 빈자리에 ‘공포(危害)’가 자리를 잡고 들어가 너희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어둠의 술수에 철저하게 속아서 스스로를 비하(卑下)하며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란다. 

 

 

‘공포(危害)’는 너희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으며, 마음을 파고들어서 갉아먹고 있단다. 모든 의지를 무너뜨리고 너희들의 의욕을 상실케 하여, 결국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만단다. 너희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고갈시키고 그 빈 자리를 먼지만 날리는 것처럼, 공허(空虛)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공포(危害)’라고 하는 것이란다. 

 

 

이것은 기생충처럼 너희들의 영양분을 갉아대면서 살아가지만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쉽게 인식하지 못하여 대비할 수가 없단다. 사랑이 사라지고 비워진 마음속에 슬며시 자리를 잡고 들어와 너희들의 마음들을 쥐고 흔들어 대며 감정을 모두 사라지게 하면서 ‘공허감(空虛感)’만이 남겨지도록 한단다.

 

 

너희들은 공허감(空虛感)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도의 ‘공포(危害)’를 경험하게 되며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홀로 무인도에 버려졌다는 것과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너희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여 결국 ‘자살(自殺)’로 내몰고 마는 것이 ‘공포(危害)’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단다. 사회가 다변화되고 극과 극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면 인생들이 ‘자살(自殺)’을 선택하게 되는데, 현재의 모순된 너희들의 사회 환경이 ‘공포(危害)’가 자리 잡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띠고 있다고 보면 된단다. 

 

 

너희들은 서로 간에 소통을 하지 않으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어서 인류들이 70억의 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천년 전의 5억의 인류들의 있었던 그 시대보다 더 열악한 소통 부재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단다. 가족 간의 대화가 사라지고, 부부간의 소통이 없어지면서 사회는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충돌을 일으키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란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인성을 갉아먹는 기생충과 같은 ‘공포(危害)’가 너희들의 마음들을 모두 갉아내어 공허감을 심어주고 결국엔 자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단다. 인류들의 가슴에는 사랑이 사라지고 없으며, 서로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의 문들은 모두 걸어 잠근 채로 나오지 않고 있어서 어둠의 속성들이 너희들을 더욱 쉽게 점령하고 요리할 수 있도록 너희 스스로들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란다. 

 

 

두려움이라는 속성은 냄새도 형태도 없이 너희들을 점령하여 점차 사랑을 멀리하게 만들면서 비워진 마음에 ‘공포(危害)’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고, 무방비 상태로 대치하고 있어서 그냥 어둠의 포로들이 되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란다.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서서히 스며드는 독가스와 같아서 너희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온몸의 중추신경들이 모두 마비되고 만 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점령당하며 죽어가는 것이란다. 독가스는 신경망과 혈액을 타고 너희들의 사지를 마구 중독시켜 움직일 수 없도록 하여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만단다. ‘공포(危害)’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영화나 게임을 통한 공포물들이 증가하여 더욱 잔인해지며 너희들의 감각들을 무디게 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 너희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책략이며, 너희들이 ‘공포(危害)’를 그저 유희의 게임 정도로 착각하게 하여 ‘공포(危害)’를 쉽게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공포(危害)’를 쉽게 생각하여 아무런 저항 없이 무방비한 상태로 받아들이게 되고, 전쟁도 게임의 일부라고 착각하게 하여 전쟁을 쉽게 일으키며, 그곳에서 인류들의 생명을 ‘공포(危害)’를 이용하여 대량 학살하려는 것이 란다. 너희들은 게임하듯이 미사일과 대포를 발사할 것이고, 첨단 무기들을 이용하여 인류들을 살상하는 장면들을 영화 보듯이 즐기게 될 것이란다. 핵을 이용한 것도 너무도 쉽게 생각하게 할 것이고, 하나의 게임을 완수하는 것처럼 전쟁을 하게 될 것이란다. 그러나 어둠은 너희들이 최후에 가서 ‘공포(危害)’를 체험하게 할 것이고, 그것에 사로잡힌 너희들의 영체들을 모두 얼어버리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란다. 얼어붙은 너희들의 영체들은 어둠 세력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란다.

 

 

인류들은 이미 상당수가 중독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그 정도로 매우 심각한데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어둠의 계략에 속아 영화나 게임, 드라마, 소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한 무분별한 공격을 받아왔고, 이미 육체와 영체 속에 심각한 중독 현상들을 보이고 있어서 이미 치료시기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란다. 

 

 

이렇게 어둠의 공격은 끈질기고 집요하며 거침이 없어서 너희들은 그 덫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단다. 인생이라는 과정을 살다보면 길목마다 덫들이 설치되어 있고,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쉽게 넘어가지 않는단다. 너희들은 중요한 고비마다 나의 목소리를 경청해야만 이 어려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데도 너희들은 무시해 버리고 모두 너희들의 판단대로 결정하여 길을 간단다. 그러다 보면 덫에 걸리는 인자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고 함정에 빠지는 인자들이 쉴 새 없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을 덫과 올무에서 풀어내 주어도 너희들은 너희들의 잘난 점 때문에 구원된 줄 착각에 빠지고 결국 나를 외면하고 만단다. 어둠은 그런 너희들의 빈틈을 노리고 파고 들어가 너희들이 저들의 깊은 수렁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란다. 평소 저들은 너희들이 ‘공포(危害)’와 두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기 위해서 게임과 영화, 드라마나 연극, 책이나 인터넷과 같은 방송채널과 시스템 등을 이용해서 너희들의 감각기관들을 마비시키고, 중추신경계에 이상 신호를 찾지 못하도록 중독시키는 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음이니,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물량공세로 수위를 높이며 너희들을 압박하고 있는데도, 이미 중독되어 기능을 상실한 너희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단다.

 

 

너희들은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저들의 책략이 노골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면 수많은 인류들이 생명을 버리고 유란시아를 떠날 것이란다. 너희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죽음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자신이 얼마나 저주스러운지, 혼자라는 고독과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 두려움과 ‘공포(危害)’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란다. 그러면 너희들이 분비해서 내보내는 공포의 기운은 강한 독성을 가지고 살아있는 인류들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고, 아스트랄 세계와 에테르 세계까지도 어둠의 기운으로 오염시키게 될 것이란다. 이것을 저들은 노리고 있어서 현재의 너희들의 신경망과 감정기관들을 마비시키고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데도 이것을 모르는 너희들은 저들의 속임수에 속아서 저들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이니,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모른단다. 




너희들의 청춘들도 PC방의 어둠속에 들어앉아서 저들이 제공하는 게임에 흠뻑 빠져들고 있으며, 어두운 공간에 찢어지는 듯한 음악인 헤비메탈이나 재즈를 듣고 신디사이저 소리가 시끄러운 록음악에 심취하여 술잔을 기울이고, 몸을 흔드는 것이 최신 유행을 아는 것이고, 유행을 놓치지 않고 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니,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아느냐! 

 

 

매캐한 담배연기에 절어 있으면서 유명 브랜드의 상품들을 선호하고 값비싼 승용차를 몰면서 사회저명인사라고 목에 힘을 주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없는 쓰레기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인가를 알고는 있느냐! 

 

 

너희들은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은근슬쩍 뒤로 감추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지만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을 외면할 수 없단다. 어둠의 인자들은 벌름거리는 코로 너희들의 비열한 모습 뒤에 숨기운 두려움과 공포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너희들을 저들의 노예로 만들고 있단다. 

 

 

무방비 상태로 있는 너희들은 속절없이 저들의 술수에 넘어가 저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 되어 의지를 상실하고 복종하고 마는 노예들로 전락하고 말 것이란다. 이것이 저들의 계략이자 노림수라는 것이란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너희들을 빛에서 어둠으로 추락시켜 돌이킬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란다. 타락한 하느님의 자녀들은 타락 천사로 기록하여 남긴 것도 너희들에게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었단다.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하늘의 자녀들을 타락시키기 위한 자료로서 있는 것이란다. 저들의 때에 너희들을 극한의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조성하여 너희들에게서 발산하여 나오는 기운들을 저들의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함인데, 그러다 보니 너희들의 중추신경계를 무디게 할 필요가 생긴 것이었단다. 그래서 귀신, 유령, 좀비, 살인마와 같은 캐릭터를 개발한 것이고, 그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영화와 게임들을 양산했으며, 오랜 기간동안 너희들이 이것들을 접촉하고 즐기면서 무감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란다. 약물이나 게임에 중독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아서 병원치료도 어려운 것이란다. 

 

 

한 번 중독된 이들은 신경계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되고, 호르몬분비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분비되어 빛의 속성이 너희들의 육체에서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단다. 너희들의 육체는 어둠이 깃들게 되면서 피골이 상접되게 변화가 오는 것이고, 빛의 기운이 더 이상 상주하지 못하게 되면서 빛의 자녀가 아닌 어둠의 자녀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란다.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게임을 통해서 완화시키는 것이 절대 아니란다. 영화나 책, 인터넷을 통하여 즐기거나 습득 한다고 해서 극복하는 것이 아니란다. 너희들은 많이 체험하고 접하는 방법이 극복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오히려 자신들이 오염되어 회복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렇게 서서히 조금씩 방송에, 매체에, 컴퓨터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것이란다.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그렇게 극복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랑이 충만하게 가슴에 차고 넘치면 평화가 찾아오고, 그 가운데서 균형을 회복하여 안정을 찾게 되면서 두려움과 ‘공포(危害)’가 머물 자리가 없게 되면서 빛이 가득하게 넘 치는 상태가 되는 것이란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온전하고 완전한 평화를 존재에게 허락하여 머물게 되는 것이란 다. 

 

 

사랑은 이렇게 존재에게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극복하여 이기어 내게 하는 것이란다. 어둠도 사랑으로 극복하여 완성하게 되는 것이자, 이기어 내는 것이란다.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너희들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너희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너희들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너희들을 힘들게 하고, 결국은 추락시키고 마는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危害)’는 이 과제를 통하여 너희들이 빛을 받아들이고, 빛으로서 완성을 이루게 하려는 사명이 있음을 알기 바란단다. 

 

 

너희들이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을 때에 느꼈던 사랑과 평화는 자궁(子宮)을 나와 탯줄이 끊어지게 되면서 평화와 사랑은 깨어지고 만단다. 그러면서 두려움과 ‘공포(危害)’가 몰려오게 되고, 너희들은 반사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란다. 살아있음을 알리는 첫 신호이자,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처음 접하면서 울리는 비명이라고 한단다. 이것은 어머니와 분리되었음을 감지하게 되면, 탯줄이 끊어져 나가게 되면, 자궁의 어둠에서 밝은 세상으로 떨어져 나오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란다. 

 

 

이렇게 너희는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접하게 되는데, 영이 분리되는 순간에, 영체가 분리되는 순간에, 모든 기억이 잠기고 분리되는 순간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란다. 그러면 함께 하고 있던 사랑과 평화는 사라지고 균형이 상실되어 어머니, 즉 자궁(子宮)을 찾게 되는 것이란다. 익숙했던 심장 박동소리가 멀어지고 나서 느끼는 ‘공포(危害)’는 너희들을 죽음이 떠올리게 하니, 산고(産苦)의 고통 속에 죽음을 맞는 영아(嬰兒)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어떤 압박에 의한 호흡정지가 아닌 바로 두려움과 ‘공포(危害)’가 그렇게 조장하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심장박동소리가 귀를 통하여 들리기 시작하면 안정을 되찾게 된단다. 그러면서 서서히 ‘공포(危害)’를 잊기 시작하는데, 심장에서 멀어지면 다시 두려움이 몰려온단다. 너희들은 이렇게 시작된 인생을 살면서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경험하며,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는 것이란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영의 사랑을 대리 체험하게 되는데, 자신이 찾아야 되는 사랑을 인생 과정 동안 짝을 찾듯이 찾게 되는 것이란다. 부모와의 사랑, 형제자매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연인 사이의 사랑, 인간과의 사랑 등등, 많은 관계성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들을 통하여 영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기억해 내려고 하는 과정이란다. 그러면서 분리되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危害)’를 몰아내고, 본래의 사랑을 되찾는 것이란다.

 

 

이렇게 영과의 분리를 통하여 너희들이 받아들였던 두려움은 사랑을 회복하면서 극복하게 되는 것인데, 사랑이 온 전하게 회복되고 나면 평화가 너희들을 어머니 자궁 속에서 안정감 있게 있었던 기억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아기 때의 기억 회복을 통하여 안정을 되찾게 되는 것이란다. 

 

 

우주의 소리, 평화의 소리, 심장박동소리, 사랑의 소리, 바로 나의 들숨과 날숨 때에 나오는 소리로써 우주의 균형과 생명들의 호흡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소리란다. 너희들은 이것을 말씀(Logos)으로 표현했고, 창조의 소리로 기록한 것이란다. 

 

 

아기들은 영체가 들어와 어머니의 자궁에서 우주의 기운을 느끼고 심장박동소리에서 나의 호흡소리를 느끼며, 평화를 찾게 되었던 것이란다. 우주를 떠나 인간의 뱃속으로, 곁으로 떨어져 여행을 하게 된 영체는 분리됨에서 오는 두려움을 어머니의 자궁에서, 심장소리에서 극복하게 되는 것이란다. 

 

 

그렇게 너희들은 9개월 동안 양육되고 기간이 차게 되면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오는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란다. 물질세계는 우주와 비슷한 환경인 어머니의 자궁과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에 너희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란다. 너희들은 그렇게 물질계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처음으로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고, 서서히 두려움의 위력에 위축되어가는 너희의 모습을 통하여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인지를 깨달아가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인생을 살면서 하느님과 영과의 관계를 기억해 내고 분리되기 전의 평화를 알게 된다면 그 사랑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깨어진 균형을 되찾고, 평화로 마음을 안정화 시키게 되면 비로소 영으로서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란다. 

 

 

 일종의 ‘두려움(fear)’은 바로 너희들이 사랑과 평화를 회복하여 분리되기 전의 상태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된단다. 분리감을 심하게 느끼거나 받아들이면 모든 균형이 무너져서 두려움이 찾아오고, 자신의 존재를 찾게 하기 위한 미로속의 여행을 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되니 말이구나. 

 

 

  

이제 ‘두려움(fear)’을 더 이상 어렵고 무서운 존재로 보지 말고, 균형을 찾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바라보기를 바란 단다. 사랑과 평화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면서 너희들을 영에게로 안내하여 연합할 수 있도록 하는 매질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품어서 너희들 안에서 완성시키기를 바란단다.

 

 

 이로서 ‘두려움(fear)’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단다. 

 

 

출처 : 상승의 문 | 창조근원의 번뇌 : 제 8 장 - 공포 (恐怖:Horror)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