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방 안이 밝아지면서 또다시 알 수 없는 존재의 위풍당당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머리 위에 무지개색 동심원들로 둘러싸인, 태양보다도 밝은 빛이 보였다. 눈이 그 빛에 점차 적응하게 되자 나는 내 앞의 백색 로브를 입은 빛나는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두 눈으로 나를 꿰뚫어 보는 그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나는 내가 이제껏 경험해 본 것 이상의 거대한 존재의 현존 앞에 있다는 것을 차마 의심할 수도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시죠?”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좀더 자신을 내어 소리쳐 물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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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이다! ••• 나는 너 자신의 하나님 현존이다, ••• 나는 너다.”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그 신성의 빛이 방의 경계를 녹여버렸다. 벽과 천장은 진동수가 증가합에 따라 사라지는 듯했고, 내 몸의 모는 세포들은 내면의 불로 이글거렸다. 마치 불길에 휩싸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나는 이 존 재의 가슴과 내 가슴을 연결하는 은줄을 보았고, 그제야 내 위에 존재하는 현존이신 하나님과 내가 하나임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의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침대에 쓰러졌다. 아침 햇살이 내 방 안을 비출 때가 되어서야 나는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었을 때도 여전히 내가 하나님이라는 인식은 충격적이었다.
.....
상위 자아와 하위 자아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였다. 불교도들은 상위 자아를 다르마카야 즉 법신불이라고 부른다. 이 상위 자아는 더 낮은 진동수에서 작용하는 몸인 상위 멘탈체에게 의식의 광선을 쏘아주는데, 불교도들은 이 상위 멘탈체를 즉 보신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의식의 광선은 마침내 인간적 자아에까지 닿게 되는데, 이것은 니르마나카야 즉 화신불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우리는 무지에 빠져 이 의식의 불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 불꽃을 그것의 근원인 신적 자아에게서 완전히 독립된 어떤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 자급자족할 수 있는 분리된 실재라고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우리는 이 신적 불꽃의 빛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 신적 현존이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때는 한순간도 없다. 신적 현존의 안배 없이는 누군가와의 만남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신적 현존 없이는 단돈 1달러 혹은 한 끼 식사조차도 우리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신성의식은 우리 안에 있는 나(I)를 느낄 때마다 일어나며, 우리가 '나는'(I AM) 이라고 말할 때마다 현상계로 불러오게 된다. 이 내재하신 신성의 불꽃은 가스 스토브의 점화용 불꽃과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항상 불타고 있으며. 외적 기구들에 불을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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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에게 있어 I AM 현존은 살아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매일, 매 순간 그녀의 말에 응답해주는 절친한 친구였다. 펄은 하나 님이 어떻게 말씀하실지 상상하거나 어떤 상상 속의 존재를 채널링 하기보다는, 자신의 살아 있는 신적 자아와 대화했다.
펄의 거실에서는 대사들이 주최한 모임이 자주 열렸었는데, 그 중 한 모임 때 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안에 내재하신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사람 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외적 마음이 조잘대는 소리밖에 듣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중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애는 유아기에 텔레비전에 노출되면서 시작되고, 전자적 자극을 받을수록 더 악화됩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신호들은 우리 뇌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죠. 오늘날의 이 모든 전자기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집중된 의식이 결핍됨으로써 마음은 무작위적인 전자 자극에 세뇌당합니다.
'기회는 한 번만 문을 두드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사들은 '기회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문을 두드려 부수려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사람이 얼마다 있을까요?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 중 문을 여는 사림은 또 일마나 될까요? 사람들 머릿속의 음악 소리는 대부분 너무나 시끄러운 수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끊임없이 생기를 부여하시는 현존이십니다. 하지만 인생 중 단 1분이라도 멈춰서 이 에너지와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에 감사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요? 이 모든 축복을 보내주시는 존재와 홀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대출을 받은 채무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받은 그 대출금을 마치 전혀 갚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써버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써버렸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죠! 그 에너지로 무엇을 했나요? 그것을 헛되이 써버렸나요? 아니면 길을 따라 전진하고 성장 하는 데,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는 데 썼나요? 우리가 이 곳에 살았기에 지구가 더 나은 곳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창조 주 하나님과 대면해서 '저는 당신께서 제게 주셨던 생명과 삶 속에서 선한 것들을 행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더 나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삶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나요?
이러한 감사함을 모르는 마음과 자기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는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반복해서 환생하는 것입니다.
.....“
마스터의 제자 p112~115
[출처] [마스터의 제자] 1.8 하나님과의 대면 (북 카페 정신세계) | 작성자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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