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 [라마나 마하리쉬] 에고를 없애면 무지는 사라진다
참나(진아, 신, 신성, 불성, 그리스도 의식,영,관찰자)는 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참나입니다. 그대는 이미 그것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희열의 상태에 무지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지가 일어나서 순수한 희열 위에 베일을 씌웁니다.
무지를 제거하려는 쪽으로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이 무지는 오직 그릇된 지식입니다. 몸과 마음을 참나로 그릇되게 여기는 것이 잘못입니다. 이 잘못된 동일시는 자기 탐구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참나가 있습니다.
무지는 환영, 즉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무지인가?” 무지는 무지입니다. 이 질문은 주체와 객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주체가 되십시오. 그러면 객체가 없을 것입니다.
참나는 그저 있음입니다. 그저 있으십시오! 그러면 무지가 끝날 것입니다. ‘나’는 항상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과정은 없습니다. 그것은 얻어야 하는 새로운 지식이 아닙니다. 무지라고 불리는 것이 참나 지식의 방해물입니다. 그것을 없애십시오. 하지만 무지나 지식은 참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무지는 허깨비와 같은 것입니다. 무지를 없앤다는 것은 무지가 실재하지 않음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환영을 정복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대의 진정한 상태에 있으십시오. 그러면 환영은 저절로 떠날 것입니다. 만약 환영을 정복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대는 수많은 어려움에 부닥칠 것입니다.
자아(에고)를 없애십시오. 그러면 무지는 사라집니다. 자아를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사라지고 진정한 참나만이 남습니다. 무지를 고백하는 자아는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무지가 없습니다. 모든 경전은 무지의 존재를 논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아가 없는데 어떻게 무지가 있을 수 있습니까? 탐구하기 시작하면, 본래 있지 않은 무지는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무지가 사라져 버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무지는 자아에 속합니다.
왜 그대는 자아를 생각하면 고통을 겪습니까? 무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삶은 무지에 대한 가정을 요구합니다. 무지는 단지 우리의 무지이며 더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나에 대한 무지 혹은 망각입니다.
무지한 사람에게 ‘나’란 자기를 의미합니다. 자기를 찾아보면 이 개별적인 ‘나’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환영이나 무지와 같은 말입니다. 무지가 본래 없었음을 아는 것이 모든 영적 가르침의 목표입니다. 무지는 자각하는 자에게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자각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영원하며 자연스럽습니다. 무지는 부자연스러우며 실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그가 무엇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를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무지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현재의 무지 상태는 지각 능력이 없는 몸을 의식과 동일시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무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혜의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지를 쫒아 버리는 것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지혜입니다.
무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지는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고 있는 그것은 오로지 지식입니다. 지식은 무지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지는 지식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지식과 무지가 있는지를 탐구하여 참나를 아는 지식이 진정한 지식입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정작 아는 자인 자기 자신을 모른다면, 그것은 오히려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지식과 무지의 바탕인 자기 자신을 알면, 지식과 무지는 사라짐니다.
그것만이 무지도 지식도 아닌 지식입니다. 대상들에 대한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 아닙니다. 참나는 알아야 할 것이나 알려질 것이 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나만이 지식입니다. 그것은 공허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인 참나만이 실재입니다. 다양성을 아는 것은 그릇된 지식입니다. 무지에 불과한 이 그릇된 지식도 지식-실재인 참나로부터 떨어져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장신구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본질인 금 없이 존재합니까?
무지한 사람에게는 ‘나’란 몸으로 한정되는 자기입니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나’란 무한한 참나입니다.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유일하며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실재입니다. 현명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바탕인 형상이 없는 무한한 존재가 실재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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