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앎

내 메시지의 가장 강력한 전달자는 체험이다

빛몸 2018. 10. 27. 21:26





내 메시지의 가장 강력한 전달자는 체험이다.



너희가 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너희에게 앎을 주는 것은 체험이다.
물론 너희가 체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앎의 다른 도구들도 주었다.
느낌과 생각이라는 도구들을.

그런데 여기서 최고의 역설은
너희가 ‘신의 말’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체험은 아주 하찮게 여긴다는 점이다.

사실 너희는 체험을 너무나 하찮게 여기고 있어서,
체험한 신이 말로 들은 신과 다를 때
아무 생각 없이 체험을 버리고 말을 간직한다.
마땅히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도.

너희가 어떤 것을 체험하고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사실로서 알고 직관으로 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말이란 오직 너희가 아는 것을 상징할 수 있을 뿐이어서
종종 너희의 앎을 어지럽힌다.

자, 이런 것들이 내 교류 도구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그 자체로 교류 방법인 것은 아니다.
모든 느낌과 모든 생각과 모든 체험과 모든 말이 다 나한테서 나오는 건 아니기에.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빌어 많은 말을 해왔고,
많은 생각과 많은 느낌이 내가 직접 창조하지 않은 근거들의 뒷받침을 받아왔으며,
많은 체험이 그런 근거들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도전은 통찰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신에게서 나온 메시지와 다른 출처에서 나온 자료의 차이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적용해보면 문제가 간단히 풀린다.

너희의
‘가장 고귀한 생각’,
‘가장 명확한 말’,
‘가장 강렬한 느낌’은 항상 내 것이다.
그보다 덜한 모든 건 다른 출처에서 온 것이다.

초심자조차도 가장 고귀하고 가장 명확하고
가장 강렬한 것을 확인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구별하기는 쉬운 일이 된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들도 주려 한다.

‘가장 고귀한 생각’이란 예외 없이 기쁨이 담겨 있는 생각이며,
‘가장 명확한 말’이란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며,
‘가장 강렬한 느낌’이란 너희가 사랑이라 부르는 바로 그 느낌이다.

기쁨과 진리와 사랑. 이 셋은 서로 뒤바뀔 수 있으며,
하나는 언제나 다른 것들을 가져다 준다.
그것들이 어떤 순서로 놓여 있는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이 지침들을 가지고
어떤 메시지가 내 것이고 어떤 것이 다른 출처에서 온 것인지 결정하고 나면,
남은 단 하나의 문제는
내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아닌가 뿐이다.

너희는 내 메시지를 대부분 그냥 흘려버린다.

어떤 메시지들은 너무 훌륭해서 진짜 같아 보이지 않고,
또 어떤 메시지들은 너무 어려워 따를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많은 메시지들은 단순히 잘못 이해되기 때문에.
그리고 대다수 메시지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내 메시지의 가장 강력한 전달자는 체험이다.
하지만 너희는 체험조차 무시한다.
아니, 너희는 특히 이것을 무시한다.

만일 너희가 자신들의 체험에만 귀를 기울였더라도
너희 세상이 지금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체험을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겪게 되는 것은
체험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목적은 방해받지 않을 것이고
내 의지는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기에,
너희는 늦든 빠르든 결국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너희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너희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선택한 대로 할 수 있는 힘,
자유의지를 주었고,
그것을 너희에게서 도로 빼앗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러므로 너희가 우주의 어느 구석에 있든
나는 몇 천 몇 만 년을 두고 같은 메시지들을
너희에게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할 것이다.
너희가 내 메시지들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들을 가까이 두고 너희 자신의 것이라 말할 때까지,
나는 끝없이 보낼 것이다.

내 메시지들은 몇 백만 년에 걸쳐
몇 천 번의 순간에 몇 백 가지 형태로 올 것이다.
너희가 진실로 귀 기울인다면 그것들을 놓칠 리 없을 것이며,
한번이라도 진실로 듣고 나면 그것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의 교류는 가장 진지하게 시작될 것이다.

과거에 너희는 그저 나한테 이야기하거나 기도하거나 나를 중재하거나 내게 탄원하기만 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진실로 듣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너희에게 답해줄 수 있다.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 신과 나눈 이야기 1 권 中에서

 


출처 : 레드아우라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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