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리고 도망치는 대신 담담해야
공포 견뎌낸 힘으로 깊은 선정 성취
두려움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부처님은 홀로 외딴 곳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이유를 열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지 못하면
둘째, 분노하는 마음, 증오하는 생각을 가지면
셋째, 의혹과 의심에 가득 차 있으면
넷째,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면
다섯째, 겁을 먹고 겁에 질려 있으면
여섯째,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고 있으면
일곱째,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으면
여덟째, 깊이 새기지 않고 잘 알아채지 못하면
아홉째,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해 있으면
열째, 지혜롭지 못하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열 가지 중 어느 하나에라도 마음이 빼앗기면 그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뒤로 물러나고, 몸과 마음을 다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수행 초기 시절 겁을 내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이 없으리란 법이 없을 테지요.
위의 법문이 끝난 뒤에 이어서 두려움과 공포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홀로 어느 하룻밤 날을 잡아서 숲속의 탑묘나 한적하고 으스스한 곳에서 밤을 지냈던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그곳에서 지낼 때 맹수가 접근하고 공작새가 나뭇조각을 떨어뜨리고 바람이 낙엽더미를 흩날려 보냈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내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내가 두려움을 기대해야 하는가? 지금의 자세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만난다면, 그냥 그 자세 그대로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부처님은 걷고 있을 때에 두려움이 엄습하면, 그 행동을 멈추거나 자세를 바꾸지 않고 두려움이 엄습하기 직전까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걸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멈춰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자세, 다른 행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적이 뚝 끊긴 외딴 숲이나 무덤가에서 홀로 앉아 선정에 들어 있을 때 행여 집중이 흩어지고 바로 그 순간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거나 바람이 휙 불어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린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도 역시 그 공포감에 휩쓸려 얼굴을 가려버리거나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담담하게 견뎠습니다. 까닭 모를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세를 조금도 흩지 않고 견딘 것입니다.
이렇게 견뎌낸 그 힘으로 다시 정신집중을 할 수 있었고 깊은 선정의 경지를 차례로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를 얻었다는 말로 설법은 끝납니다.
“아, 무서워!”라고 소리치기 보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두려움과 공포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라고 되묻는 부처님의 질문은 곧이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맹수의 울음소리일까, 아니면 ‘맹수의 울음소리는 무섭다’라는 세상 사람들의 오래 된 생각일까?”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맹수의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측은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텐데 왜 꼭 그걸 두렵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인지를 되묻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두려움 그 자체이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두려움이란 것이 ‘내게도 일어났다’는 걸 확인하는 데에서 오는 건 아닐까 합니다.
행여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치기보다는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담담하게 두려움과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맹수와 마주하지 않고 두려움과 마주한다는 사실이….
그리하면 두려움이란 것은 실체가 없이 생겨난 녀석인지라 어느 사이 슬며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바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부처님의 방법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불교신문 2656호/ 9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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