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아 대사님

제15장 : 두 가지 형태의 어둠 (1/2)

빛몸 2024. 1. 30. 18:55

나는 여러분의 오랜 친구인 예수아이며, 오늘 밤을 사랑과 화합의 에너지 장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주 자주 지구의 삶 속에서 표류하고 있으며, 길을 잃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내면에, 즉 여러분의 영혼 속에 살아 있는 진실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분이 바쁘거나, 많은 활동, 업무, 그리고 책임감에 몰입해 있을 때에는, 대개 그러한 진실과 교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부디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러한 외적인 모든 압박감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고요함을 느껴보세요. 가슴속에 존재하는 고요함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혼잡스러운 일상의 생활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감지할 수 있는 실재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남으로써, 우리는 오늘 여러분이 참된 자신을 기억하고, 가슴속에 충만해 있는 고요함을 다시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시 살아가게 되겠지만, 이제는 이전보다 더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삶이 전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삶은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체험하고, 눈부신 빛의 천사들로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그러한 빛을 타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지구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삶은 다시 단순해지고, 편안하며, 기쁨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 내면으로 들어가, 여러분이 나왔던 근원, 즉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새로운 형태를 취하지만, 언제나 완전한(나뉘지 않는) 하나인, 불멸의 영원한 빛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흐름(stream)의 일부이며, 사실 여러분에게는 좋지 않은 어떤 것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세속적인 몸속에 거주하고 있는 지금도 여러분은 안전하고, 온전합니다. 투쟁과 분쟁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도,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오늘 우리는 빛과 어둠에 대해, 그리고 어둠 속으로 빛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무엇일까요? 인간인,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어둠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둠을 체험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고통과 슬픔 혹은 두려움을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니다. 하지만 어둠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어둠이 왜 삶에 존재할까요?

 

사람들은 수 세기에 걸쳐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어둠은 왜 존재하고,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며, 이 어둠으로 뭘 해야 하나?”라고 열린 마음으로 질문하나요? 아니면, “왜 내 삶 속에 그러한 어둠이 존재하며, 그러한 어둠을 어떻게 해야 이기거나, 피할 수 있을까?”라고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저항감에서 의문을 제기하나요? 후자의 질문에 표현된 절망감과 저항감을 느껴보고, 그러한 감정들이 여러분의 내면에도 존재하고 있는지 알아보세요. 왜냐하면 어둡고, 건강에 해로우며,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인간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가장 어려운 도전과제는 처음에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다시 말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은 것에 대해, “좋아(yes)”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어둠의 형태로 여러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좋아(yes)”라고 말할 수 있는 내적인 커다란 힘이 요구됩니다. 만약 그러한 힘을 찾을 수 없고, - 이해할 수 없어 - “싫어(no)”라고 말한다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반대하는데 익숙해지게(무감각해지게) 됨으로써, 어둠은 더욱더 심화되고, 절망감도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삶 속에는 두 가지 종류의 어둠이 있습니다. 첫 번째의 어둠은 외적인 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어둠입니다. 이러한 어둠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질병 혹은 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어떠한 위기 상황이나, 심한 좌절의 형태로, 여러분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첫 번째의 어둠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첫 번째의 어둠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처음에는 운명에 저항하고, 어둠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저항감을 계속 유지하고, 폐쇄된 채,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판단함으로써, 계속 아니야(no)”라고 말한다면, 또 하나의 어둠의 층이 추가됨으로써, 두 번째 형태의 어둠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어둠을, 나는 첫 번째의 어둠을 둘러싸고 있는, 두 번째의 어둠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첫 번째의 어둠으로 인해, 여러분은 격정적인 깊은 감정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깊은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을 야기하는 뭔가가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되며, 그러한 감정들을 체험할 때, 여러분은 훨씬 더 활기에 넘치게(very much alive) 됩니다. 엄청난 물결(파도)처럼, 삶이 여러분을 통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할 수 있나요? 세찬 감정적인 강풍이 여러분을 덮치게 될 것이며, - 이러한 감정들은 여러분에게 충격을 주게 됨 -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체험 속에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뭔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과연 여러분이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내적인 힘을 찾을 수 있다면, 비록 인간으로서 여러분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더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첫 번째의 어둠은 영혼이 여러분에게 이러한 체험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있는, 치유를 필요로 하는 뭔가를 치유할 수 있도록, 영혼이 숨어 있는 뭔가가 표면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하는 체험을 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열고, 그러한 체험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폐쇄된 채, 계속 저항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오(no)”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어둠에 내가 두 번째의 어둠이라고 불렀던, 또 다른 어둠의 층을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어둠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첫 번째의 어둠에 대해, 여러분이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속해서 아니오(no)”라고 말한다면, 감정의 흐름은 멈추게 될 것이며, “싫어, 나는 이것을 체험하고 싶지 않아; 나는 거부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말함으로써, 여러분도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약 끈질기게 계속 거부한다면, 여러분은 분개심과 분노 그리고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sentiments)는 정말로 감정이 아닙니다. 그러한 정서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 내면에서 얼게 만드는 판단들입니다. 두 번째의 어둠은 삶이 여러분을 통해 흐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벽과 방어막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됨으로써, 심각한 형태의 어둠, 즉 깊은 절망감, 소원함, 우울증을 불러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심각한 우울증을 앓을 때, 생명의 흐름은 거의 멈추게 되며, 내면적으로 죽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삶은 언제든지 변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기본적으로 삶을 신뢰한다면, 삶은 본질적으로 성장하고,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새로이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기회)을 제공해주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끈질기게 아니오(no)”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은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런 식으로 삶을 판단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삶과 단절되어,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데려가는 것은 첫 번째의 어둠, 즉 외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그것은 첫 번째의 어둠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데려가는 것)은 두 번째의 어둠인, 내적인 경직성으로, 여러분이 자신의 본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어둠 속으로 빛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첫 번째의 어둠에 도달하여, 아주 슬프고, 불안해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그들과 접촉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자신들의 몸과 정신을 관통해서 흐르는 감정들과 교감하며,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록 이들이 아주 위중한 상황에 직면에 있다 하더라도, 이들은 여전히 온전하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의 어둠을 처리하고 있는 사람들은 편안함과 연민이 필요하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사랑스러운 행위를 받아들이고, 고맙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아주 활기에 넘쳐 있는 것입니다.

 

[출처] 15: 두 가지 형태의 어둠 (1/2)|작성자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