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툴레 대사님

[에크하르트 툴레] 내맡김에 대하여

빛몸 2019. 7. 19. 13:40


질문:
 
당신은 내맡김에 대해 몇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그 개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소 숙명론적으로 들립니다. 세상을 항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세상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보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현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것을 창조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굴 속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맡김의 상태와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성취하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답변:
 
어떤 사람들은 내맡김이라고 하면 패배와 포기, 삶의 도전 앞에서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내맡김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 대책 없이 수동적으로 참고 지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내맡김은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지혜입니다.
당신이 삶의 흐름을 경험하는 유일한 장소는 지금이므로,
내맡김이란 지금의 순간을 무조건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에 대한 내면의 저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저항은 마음의 판단과 부정적 감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살이가 잘못 돌아갈 때 그렇게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과 지금 있는 것 사이에
격차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고통의 틈새입니다.
 
세상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으려면 온전히 내맡기기 위한
수행이 필요합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마자 당신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와 연결됩니다.
저항은 마음입니다.
내맡김은 순수한 내적 현상입니다. 외부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고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사실, 내맡긴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단지 '지금'이라고 불리는 미세한 조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항하는 마음을 버려라>
 
잠시 동안 겪게 되는 질병이나 사고는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실재하고 무엇이 허구인지,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가르쳐 줍니다. 불행한 일을 당함에 슬프고 눈물이 나겠지만 저항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 슬픔 아래서 깊은 평화와 고요 그리고 신성한 현존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이란 저항과 동의어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즉시 당신은 마음의 지배에서 벗어나 존재와 다시 연결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고통은 이름과 형상 너머에 있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일깨워 주기 위해 거기 존재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관점에서 악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지고지순한 선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은 용서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용서할 때까지 악은 구제받지 못하고 악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에고가 가장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것은 드라마가 끝나는 것입니다. 논쟁은 자신의 입장에 동화되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저항하고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서는 반드시 하강 주기가 필요합니다. 실패를 하고 깊은 상실감이나 고통을 경험해야만 영적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삶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은총과 평화와 빛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이란 모두 저항하는 마음입니다. 부정적 분노나 초조함에서 격심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우울한 기분이나 시무룩한 원망에서 자살에 이르는 절망까지 실로 다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