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상승

그대가 삶에서 진리를 구현한다면 그 진리는 신성해진다

빛몸 2017. 8. 6. 07:32

그대가 삶에서 진리를 구현한다면 그 진리는 신성해진다.



무엇을 믿든 단순히 그것을 믿는데 그치지 말라.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어라.
그것을 직접 삶 속에 구현함으로써 신성하게 하라.

단순히 머릿속의 믿음으로 그치지 말라.
그것은 실존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때 그 믿음은 신성해진다.

생각에 그치는 믿음은 아무 쓸모가 없다,
믿음이 피가 되고 뼈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가 직접 그 믿음을 삶에 구현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 옳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삶에 실현하라!
그대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유일한 증거는 이것밖에 없다.
그밖에 다른 증거는 없다.
그대의 삶 자체가 그대 믿음의 유일한 증거다.

그러나 이 말은 그대 자신에게 어떤 믿음을
강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믿음과 특성을 자신에게 강요하라는 뜻이 아니다.
강요한다고 해서 그것이 신성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위선이다.
어떻게 위선이 신성해질 수 있겠는가?
믿음으로 삶을 살아라.

외부로부터 내면을 향해서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밖을 향하는 삶을 살아라.
먼저, 진리를 경험하라.

예를 들어, 나는 명상하라고 말한다.
그대는 이 말을 하나의 믿음으로 만들 수 있다.
'명상은 좋은 것이며,
명상 안에 위대한 진리가 담겨 있다.'라고 믿을 수 있다.
명상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대해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한 번도 명상을 해본 적이 없다.

명상에 관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논쟁을 벌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실제로는 명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명상이 논쟁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되고,
명상을 직접 맛보아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억지로 어떤 명상의 자세를 고수할 수도 있다.
붓다처럼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의 내면에는 붓다와 같은 침묵,
그와 같은 순수함이 없다.
겉으로는 돌부처처럼 앉아있지만 마음속에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가식이다.
그대는 그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신성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성스럽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단순히 가장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명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대가 삶에서 진리를 구현한다면 그 진리는 신성해진다.



- 오쇼라즈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