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근본 원인인 사물이 하나의 대상으로 실재한다는 무지를 비워내야 한다.
무지를 비워내려면
일체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일체 사물의 본성을 보려면
대상으로 향해 있는 마음을 안으로 돌려,
마음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 것은 사유의 노력으로 모방할 수도 없고,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도 없기에,
마음의 본성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
마음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마음이 일어나는 모양을 의도 없이 관찰하고,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그 마음의 뿌리를 그대로 보면 된다.
드러나는 모습을 없애려 하거나, 모습을 취하거나 꾸미려 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도 보지 않기에 마음의 본성을 체험한다.
비록 마음을 볼 때 어떤 사물도 보는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마음이 완전한 무 자체는 아니다.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지만,
마음의 기본적 특성, 본질은 정광명이자 나타난 모양 없음(공성)이다.
본래부터 마음은 나타난 모양이 없는 정광명이다.
...
마음의 본성은 생각이 꾸며낼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그렇지만 생각의 모양은 마음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은 경험하는 행위와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은 그 안에 모양이 없어,
그 마음을 찾아보더라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명정함이기에 인식하고 있고, 알고 있다.
마음의 밝고 투명함은 명정한 인식을 뜻하며,
물리적인 빛이나 그와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찾을 모양이 전혀 없고, 한편으로는 자각이 있다.
마음을 경험할 때 경험하는 것, 자각하는 대상은
그 것을 경험하는 자에게도
관념적 언어로 묘사되거나 인식의 내용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악되는 것, 객관적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물이거나, 혹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어야 한다.
마음은 하나의 사물인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무도 아니다.
사물의 참된 본성은 언어가 담아낼 수 없는 것이며,
나타난 모양과 모양이 없음의 상호불가분성이다.
마음의 참 본성을 볼 때, 모든 사물의 참 본성을 보게 된다.
그대여, 그대는 마음의 참 봄(見) 없이 사물의 참 봄(見)을 말하고있진 않는가.
참 봄(見)은 모두 마음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이것은 환영의 모양을 잡으려는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
나타난 모양을 보더라도 그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음이 마음의 참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본성을 깨달으면,
저절로 모든 고통의 감정이 꺼지고,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
먼저 몸과 마음을 주의 깊게 깨어서 관찰해야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마음을 집중시킬 대상 없이 행하는 명상을 말한다.
이 순간에 자신이 행위와 상념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성취하는 방법은 마음을 대상으로부터 이완하는 것이다.
마음이 바라보는 대상으로부터 이완할 때, (전체보기)
마음의 체는 동요를 멈추고 투명하게 될 것이고, (사라지는 사념)
마음의 본성을 보는 경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성관찰)
사념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정도에 비례하여,
대상 속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의 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의 노력에서 벗어날 때,
상념은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고,
상념은 저절로 자신의 틀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사라져 없어진다.
그리고 마음의 본성과 직접 대면하더라도
그것을 파악하고 해석하려는 마음의 시도없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 것이 마음을 쉬는 방법이다.
마음이 머물러 있는 그 상태에서,
위빠사나의 통찰명상을 실천한다.
여기서 말하는 위빠사나의 정의는
어떤 무엇도 바라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라 볼 대상적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식의 범위로 파악되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 것이 차지하고 있는 시공간상의 위치가 없고,
구체성을 띠고 있는 어떤 성질도 모양도 아니다.
...
하지만, 만약 이 마음에 어떤 방향이 생긴다면,
마음이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모양으로 지을 수 있고, 꾸밀 수 있고, 희망할 수 있는
어떤 위치, 목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의 본성은 이미 직면하고 있는 것이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익숙해지려 하는 이것이다. (생활명상)
이미 직면하고 있는 이것과 익숙해지는 것이다.
해결책은 직면한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분노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것이 어떠하다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파악하지 않고,
아무런 힘도 가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아무런 실체성이 없다.
나타난 모양이 어떤 것이든,
모양을 초월한 이 마음의 보편적 바탕을 보면,
그것은 더 이상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궁극적 깨달음에서 뿐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능력에 있어서도,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마음은 모습이 있는가?
마음은 하나의 내용인가?
마음은 그 자신을 형상이라는 틀로 보거나,
무엇이라 지칭할 수 있는 내용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 말은 나의 의식의 흐름이 마음의 본바탕을 볼 때,
그 것은 보거나, 형언할 수 있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음이 마음을 볼 때 어떤 것도 봄이 없다.
자아가 현상을 경험할 때 어떤 것도 경험함이 없다.
어떤 것도 봄이 없고, 경험함이 없을 때,
자아라는 중심도 없고, 현상이라는 가장자리도 없을 때,
그 것을 두고, 참다운 본성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는 상호 대치되는 어떤 모순도 없다.
마음이 형상을 바라볼 때,
마음의 하늘에 떠 있는 형상이라는 그림을 보고,
마음이 형상을 볼 때,
형상이 비어있는 그 형상의 하늘을 보고,
마음이 형상을 볼 때,
형상과, 그 형상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
무분별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다.
이 때 수행자의 마음은
마음이 지어낼 수 없고 개념화 하지 못하는
불확정성, 무분리의 함일적 시공을 경험한다.
이것은 자아라는 중심,
현상이라는 어우러짐,
마음이라는 흐름을 모두 포괄하는 하나의 마음,
원초적인 지혜, 수행자의 깨달음이다.
....
마음이 마음을 볼 때, 아무 것도 봄이 없다.
그러나 아무 것도 봄이 없음에서,
그 본성을 경험한다.
작성자 ; 랄라
'의식 상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에 핀 꽃 (0) | 2018.08.25 |
---|---|
성욕과 완성 (0) | 2018.08.23 |
감정체와 감정의 처리-이것이 영적인 연금술인 것입니다. (0) | 2018.08.20 |
우리가 진짜 깨달음을 원하는 것일까? (0) | 2018.08.17 |
18장 : 애정관계에서의 방하착 (0) | 2018.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