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상승

<책 소개>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빛몸 2025. 4. 3. 07:58

 

 

 

heal4us.tistory.com

(깨달음과 해탈과 명상과 수행)

 

 

이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원저명 DYING TO BE ME) (샨티)은 인도인 부모를 둔 여성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가 부모를 따라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홍콩으로 이주하고 자라면서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한 채 인도인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여성으로서 억압당하고, 영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홍콩에서 사회적으로 차별 당하고 무시 당하면서 고독하고 삶에 주눅이 든 채로 항상 남의 눈 밖에 날까봐 두려워 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체험을 하며 자라게 됩니다.

 

그후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면서 행복한 결혼을 했지만, 주변에 친구와 아는 사람들이 암에 걸려 죽기 시작하면서 암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2002년 자신도 림프종 진단을 받고 4년간 동서양의 온갖 좋다는 치료법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하지만 결국은 2006년 말기 악성 림프종이 온 몸에 퍼져서 장기가 기능을 멈추며 죽음 직전에 30시간 동안 임사체험 상태를 경험합니다.

 

임사체험 동안 자신의 영혼의 진정한 장엄함과 여러 신비한 체험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암으로 죽은 친한 친구의 영혼을 만나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고 자신의 영혼과 모든 존재가 궁극에서 하나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자신이 육체로 돌아가면 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육체로 돌아오는 선택을 해서 며칠만에 암이 완전히 사라지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후 임사체험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통해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하고 체험한 내용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됩니다.

 

이 책은 저번에 소개한 안케 에베르츠의 <9일간의 영혼 여행> (샨티)과 영혼의 쌍둥이 메시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며, 아니타 무르자니가 2006년에 임사체험을 하고, 안케 에베르츠가 2009년에 임사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저번에 소개한 <내 영혼이 내 인생을 계획했다면> (지나 레이크 / 정신세계사) 책과 함께 <9일간의 영혼 여행>과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책은 인류가 자신의 장엄한 영혼의 진실을 알고 영혼이 깨어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인류의 필독서들 중의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꼭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저자의 홈페이지는 www.anitamoorjani.com 이고, 아래 내용은 2012년에 출간된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고, 위 책 표지 2022년 개정판에는 저자가 이 책이 처음 출간된지 10년 사이에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 되었습니다.

 

 

- vision -

 

 

 

<내용 중에서>

 

 

나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내 감정이 압도될 때마다 번번이 내 자신이 확장되는 것을 알았고, 그러면서 모든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한 번 더 아주 커다란 태피스트리가 펼쳐지고 있다는 안도감에 편안해졌다. 그 태피스트리 안에서는 모든 것이 원대한 계획에 따라 정확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물리적 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계속해서 멀리, 더 멀리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계속 넓어져서 훨씬 더 넓은 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이 다른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바깥쪽으로 더 넓어져가면서 모두이자 모든 것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대한 감정적 집착이 점점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오로지 장대하고 영광스러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나를 둘러쌌고 내가 계속해서 모든 걸 놓아가는 동안 나를 꽉 감싸주었다.

 

이는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 다른 데로 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깨어났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내 영혼은 마침내 자신의 장엄한 진짜 모습을 깨닫고 있었다! 사랑과 기쁨, 황홀경, 경외감이 내 안으로 나를 뚫고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 잠겨버렸다. 나는 가히 내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랑에 집어삼켜지고 둘러싸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고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아무런 자격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 그것은 전혀,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랑을 받기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그것을 얻기 위해 내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는 듯했다.

 

그 세상에서는 시간도 다르게 느껴졌는데, 나는 모든 순간을 한꺼번에 느꼈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 즉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여러 삶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것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우리의 현세적 마음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연속적인 장면들로 바꾸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우리가 몸을 통해 표현하지 않을 때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라는 한계가 없을 때 나는 나와 관련된 모든 시간과 공간의 지점들을 한꺼번에 이해했다.

 

그때 갑자기 신이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내가 지금 바로 그 '상태'에 있었다.

 

진정한 내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은 또한 내가 여기에 와서 되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의 모습을 이 우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장엄할 뿐이라는 앎이 나를 가득 채웠다!

 

 

 

'왜 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만 하고 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창조적인 능력을 억누르기만 했을까? 싫을 때도 좋다고 하면서 번번이 내 자신을 배신했었어! 그냥 내가 되는 대신 늘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면서 스스로를 모독했었지! 왜 나의 아름다운 가슴을 따르지 않고 나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과 살아있는 존재들만이 아니라, 밖으로 넓어지고 넓어져 우주 안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로 엮여 있는 통합체였다. 모든 사람과 동물, 식물, 곤충, 산과 바다, 무생물, 우주까지----- 나는 전체 우주가 살아있으며, 모든 생명과 자연이 다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무한한 전체에 속해 있는 것이다. 나는 전체 생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통합체의 일면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우리 각자는 집단적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또 예전에 믿었던 것처럼 암이 내 잘못에 대한 처벌도 아니요, 내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로 암이라는 악업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수많은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엄청난 힘이 바로 이 병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넌 언제나 집에 있단다. 아가.' 아버지가 내게 힘주어 말했다. '넌 늘 집에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거야. 그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내가 어느쪽으로든 의식을 주면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무의미해 보였다. 시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인양 고려할 요소조차 되지 않았다.

 

조건 없는 사랑 속에 내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고, 나는 이 문턱을 넘어 그 사랑을 영원히 느끼고만 싶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살아있는 존재와 창조물의 순수한 본질 안에, 그 하나임 속에 감싸여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런 고통도, 괴로움도, 드라마도, 에고도 없었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깨달았고 내 참자아의 장엄함을 맛보았기 때문에 만일 삶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면 내 몸은 삽시간에 나으리란 걸 알게 된 것이다. 몇 달 혹은 몇 주가 아니라 며칠 안에 낫게 되리란 사실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이 새로운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내 몸이 내 내면 상태의 반영에 불과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일 나의 내적 자아가 자신의 광대함을, 만유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내 몸은 곧 그것을 반영하여 삽시간에 치유될 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같은 전체의 일면들이라면, 그리고 그 전체가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 당연히 본래 우리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실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의 진실대로 사는 것, 본디 제 모습인 사랑이 되는 것-----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이 진실을 확증해 주기라도 하듯, 아버지와 친구 소니가 내게 다가와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 네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돌아가 두려움 없이 네 삶을 살려무나!'

 

나는 일종의 승리감을 느꼈다.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전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죽는 것도, 암도, 항암 치료도 두렵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를 망가뜨렸던 건 바로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

 

 

 

모두들 뭔가를 하는 데에 사로잡혀서 그저 순간에 머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많이 '내'가 되고 싶었고, 살아있는 이 기분 좋은 순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음미하며 즐기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 온갖 잡다한 세상사, 미래나 돈, 직장, 집, 집안일 걱정 따위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사소해 보였다. 웃고 즐거워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판단받지 않았다. 오직 연민만 있을 뿐이었고, 그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내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도 나는 아직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내 눈에 우리는 정신적 치유든 육체적 치유든 치유를 장려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병도 나이 듦도 죽음도 돈이 부족해지는 것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닐 때 두려워 할 것은 별로 없다. 죽음이 겁나지 않는다면 그 밖에 두려워할 것이 뭐가 더 남겠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아직도 내게 실재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쪽 세상이 더 진짜 같았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불편했다. 예를 들어 모두들 돈과 경제적인 문제로 지독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즐기고 감사할 만한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무척이나 많은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단지 돈을 위해 다른 모든 것 - 사랑, 관계, 재능, 창조성, 개성 등등 - 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방식이 내게는 틀려도 한참 틀려 보였다. 중요한 것과 가치 있는 것이 잘못 정해져 있었고, 모든 것이 본말이 전도되어 있었다.

 

'단지 돈 때문에 즐겁지도 않은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직업을 보는 관점도 그렇고, 아무튼 전반적인 행위의 기준이 이제는 아주 달라졌어. 이곳에서의 내 삶과 시간은 내게 그보다 훨씬 소중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훨씬 중요해 보였다.

 

'돌아가 두려움 없이 네 삶을 살아라!'라는 메시지야말로 내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계속해서 울려 퍼지던 메시지였다. 임사 체험 덕분에 나는 현실을 바깥에서 보지 않고 내면에서 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외부 세계를 진짜라 여기며 그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을 갖는 동안 나는 내 힘을 바깥세상에 내주었고, 나를 통제하는 힘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있었다. 그런 관점을 지녔을 때 나는 내 삶을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상황의 희생자였다. 병조차도 어느날 우연히 내게 '닥친' 외부 사건이었다. 하지만 임사 체험 후 나는 내 자신을 더 커다란 전체를 이루고 있는 신성한 일부라고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저마다 이 거대한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서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이 목적이 없는 것 같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 때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본연의 모습에,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텔레비전 광고나 신문, 대형 제약 회사, 친구들, 문화적 사회적 신념 같은 외부 원천에 내 힘을 내어줄 때 일어나곤 했다.

 

과거에 내가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답을 찾으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책을 찾았고, 선생과 구루를 찾았다. 그들이 영원한 미제의 해결책을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안으로부터 보는 관점을 갖는다는 건 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전체가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상황을 물리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대신 내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혼자 앉아 있는다든지, 자연 속을 걷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중심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할 때 외부 세계 또한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실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많은 장애물들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우주 안의 이 중심 자리를 잊어버리곤 했다. 물질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드라마와 모순, 불안과 고통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확장되고 장엄하며 무한한 존재로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참모습인데도 말이다. 감사하게도 임사 체험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가 절대로 중심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만 잠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중심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문제를 물리적 차원에서만 풀려고 할 때 오히려 해결이 더뎌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훨씬 일이 더디게 풀리고, 좌절감과 스트레스만 더 쌓이는 걸 느낀다. 중심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남아 있던 많은 문제들은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이것이 삶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그저 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는 내가 거대한 우주 태피스트리의 일부이며 그것의 중심에 있다는 것, 나의 내면으로 들어감으로써 전체 우주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안 데 따른 것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다른 이의 치유를 돕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도 갖고 있다고 분명하게 믿게 되었다. 우리가 내면의 무한한 장소에 연결되면 - 그 안에서는 우리가 곧 전체다 - 병은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나를 허용하고 그저 내 자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이 커다란 모험의 여정에서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내가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벌어지도록 나를 '허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저 펼쳐질 것이었다. 우주는 내가 준비되어 있는 것만을 내가 준비된 '때'에만 준다는 것이다. '당신이 모든 것과 하나'라는 것을 진실로 깨달을 때 삶 역시도 바로 이와 같다는 걸 당신은 알게 된다. 그때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잃게 된다.

 

내가 내 자신이 될 때, 나의 그 독특하면서도 완전한 장엄함이 내 자신과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때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진실로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이 가장 마술적인 방식으로, 상상도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내 삶 안으로 들어온다. 내 본연의 모습인 힘과 사랑을 날마다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왜 내가 암에 걸린 것 같으냐는 것이다. 그 대답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두려움'이라는. 그저 모든 것이 다 두려웠다. 실패할까봐, 누가 날 싫어할까봐,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착한 사람이 못 될까봐, 또 병도 두려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암이 두려웠고, 암 치료법도 두려웠다. 사는 것도 무서웠고, 죽는 것도 무서웠다.

 

나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얻으려고 평생을 들여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걱정에 사로잡혀서 내 진정한 모습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암은 처벌도, 그 비슷한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은 그저 내 자신의 에너지였다. 내 에너지가 두려움 때문에 내 본연의 장엄한 힘으로 표현되지 못하자 암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 광대무변의 상태에서 나는 내가 평생 자신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고 얼마나 심하게 판단했는지 깨달았다. 나를 벌주는 이는 따로 없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였음을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나를 판단한 사람, 내가 저버린 사람,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내가 나를 한 번도 사랑해주지 않았고, 내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며, 내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봐 주지도 않았음을 깨달았다. 조건 없는 장엄함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는데도, 육체적 삶이 그것을 가려버린 것 같았다. 아니 지워 없애버린 것 같았다. 그것을 이해하자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엇에 닿아 있는지가 보였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모두가 닿아 있는 원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중대한 선택을 했다. 돌아가자고. 몸을 입은 채로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내 몸이 세포 하나하나가 여기로 돌아오기로 한 내 결정에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끔히 나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장엄하고 무한한 자아가 삶을 계속하면서 이 몸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겠다고 결정했기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결정을 흔들 수 없었다.

 

내가 마침내 병이 나은 이유는 내 진정한 영혼이 안에서부터 빛을 발하도록 내 스스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 같은 것이 병을 낫게 했냐고 묻는 이들이 많지만, 대답은 '아니오'이다. 임사 체험 동안 내 상태는 마음을 넘어서 있는 상태였고, 내가 치유된 것은 내 파괴적인 생각들을 다른 생각으로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그저 말끔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의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존재의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순수의식이었다. 바로 내가 장엄함이라고 부르는 것! 이 하나임의 상태는 이원성을 뛰어넘는다. 나는 진정한 내 자신에 연결될 수 있었다. 영원하고 무한한, 전체를 아우르는 나의 일부와.

 

분명히 말하건대 내 병을 낫게 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었다. 임사 체험은 순수한 알아차림의 상태였고, 전에 가졌던 모든 주의와 신조가 완전히 중지된 상태였다. 바로 이 상태가 내 몸을 스스로 '재건'하게 한 것이다.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려면 치유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내려놓고 그저 삶이라는 흐름을 즐기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깨달은 내용이다. 내가 단지 이 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존재임을 깨닫는 것, 내가 무한히 큰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 치유의 핵심이었음을 나는 임사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 되는 것'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곧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이 이원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 또 내가 사랑이라는 걸 안다면 상대방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임사 체험 상태에 있을 때 온 우주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원자와 분자, 쿼크, 테트라쿼크는 전부 사랑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도무지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내 본질이요, 온 우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모두 무한하고 조건 없는 사랑의 스펙트럼의 일부이다. 사실, 우주의 생명력 에너지가 곧 사랑이며, 나는 그 우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깨달으니 내가 가치 있어지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이미 내가 되려고 하는 그 모든 것이니 말이다.

 

'사랑이 되는 것'은 또한 내 영혼을 보살피는 것과 내 욕구를 돌봐주는 것, 또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늘 자신에게 진실하게 되고, 자신을 더없이 존중하며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또한 불완전함, 실수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들도 아무런 판단 없이, 오직 조건 없는 사랑을 익히고 경험할 기회로만 보게 된다. 이기심은 자기 사랑이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나를 판단하지 않을 때 나는 다른 이도 판단하지 않는다.

 

각자의 장엄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되고, 자신도 남에게 통제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곧 사랑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모든 두려움을 놓아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살아나게 된 유일한 이유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모두 이미 내 안에 있으며, 나에게 참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나를 열어놓기만 하면 언제든 내게 필요한 것이 주어진다는 것을. 이는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우리가 육체와 마음이라는 필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감각에 의한 제한이 사라진 상태에서 보면 모든 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윤회 개념이란 한갖 해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해석 방식인 것이다. 몸에서 빠져나가면 우리는 시각이나 청각, 촉각, 미각, 후각 같은 것이 아닌 자각의 상태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우리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우리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과 열정, 그 밖에 수많은 인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감정들은 순수 의식이나 '하나임' 상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후의 삶에 필요한 경험을 익히거나 쌓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건 별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사후에는 그런 배움과 경험 따위가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장엄함을 보고 우주와 내가 하나이며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병이 나았다. 나로부터 분리된 외부 창조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외부라는 낱말 자체가 분리와 이원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우주 에너지에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모두 그 에너지와 하나임을 강하게 느꼈다. 사실상 우리가 바로 이 우주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바로 나의 마음, 즉 나의 생각이다. 특히 자기를 제한하는 생각이다. 앞에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임사 체험 상태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때 내려놓았다는 것은 실제로는 나의 지성을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뜻이다. 그와 함께 나를 제한하는 믿음들을 모두 내려놓고 우주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도록 하였다. 마음이 말끔히 비워지자 수문이 열렸다. 낫기 위해서 우주의 본성을 거스르며 싸우다가, 이제는 '기'가 그 흐름대로 흐르게 내버려둔 것이다.

 

 

 

마음은 '행위함'에 더 관련되고, 영혼은 '존재함'에 더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지성은 끼니를 잇고 집세를 내기 위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는지 계산하는 데 반해, 영혼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할 뿐이다.

 

오랫동안 오직 머리의 소리에만 의존해서 살다보면, 우리는 무한한 자아와의 연결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저 '존재'하기보다 계속해서 뭔가를 '하는' 상태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영혼의 목소리에 따라 사는 것, 허용의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 상태에 있다. 사실 자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우리의 진정한 본성인 사랑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동시성에 의해 자기에게 딱 맞는 선생이나 책, 영적인 사상을 끌어당기게 된다. 아주 딱 맞는 때에 말이다!

 

자신의 완전함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계속 스스로를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끼며, 그럼으로써 생명력 에너지의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른다'. 이 생명력 에너지는 바로 우리 자신이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도록 장려받는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독특함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매우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될 것이다.

 

 

 

장엄함의 눈으로 보자면, 범죄자들도 그들 자신의 제약과 두려움, 고통의 희생양이다. 애초에 자기가 진정 누구인지 알아차렸다면 그들은 어떤 해악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그 지점에서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할 유일한 일이 그냥 '있는' 것임을 안다. 나는 내가 우주 에너지와 하나임을 느낀다. '행위함'에 의해서 처지는 게 아니라 '존재함'에 의해서 고양되고, 우주 에너지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우주 에너지와 '함께' 간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내 삶은 마치 선禪을 수행하는 듯한 삶이 되고, 나는 그 안에 현존하면서 모든 것이 현실 밖으로부터 인도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장 못된 사람의 눈을 우리가 각기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변화를 볼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깨달음을 넓혀갈 때 우리는 우주 차원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빛이, 다시 말해 장엄한 우주 에너지가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이 또 우리 자신임을 깨달을 때 우리 개개인은 바뀐다. 그것은 우리가 열려 있는 준비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느리지만 깊은 변화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다.

 

 

 

나는 그저 내 가슴을 따르고, 그렇게 할 때 나는 결코 잘못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자신을 무한한 존재로 보게 되면서, 몸은 스스로를 알아서 돌본다. 몸은 내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영성의 길을 따를 때 우리는 존재 내면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따르게 되고, 우리 모두가 그 중심에 있는 무한한 자아와 보조를 함께하게 된다. 조직화된 체계들이 얼마나 거짓되었는지는 여러 문화들을 보면 대번에 분명해진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 있는 그 무한한 공간을 알아보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기도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음악이나 미술일 수도 있다. 혹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심지어는 지식이나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열정과 창조성, 그리고 생의 목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그런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와 떨어져 있는 외부의 신에게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 삶 자체가 기도라고 느낀다. 명상은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명상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주고 온전히 깨어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전체 안에서 내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완전한 허용'의 상태에 있을 때 가장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이 모두가 누릴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내 안에 욕심과 경쟁심을 낳았다. 이 모든 감정은 우주가 부족하며 제한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실제로 우주는 무한한데 말이다.

 

내 무한한 자아의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내 자신을 '진행중인 완전성'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돌아가는 만화경처럼, 완전성의 작업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오, 삶은 원래 그렇게 발버둥 쳐야 하는 게 아니었어. 삶이란 즐기면 되는 것,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였어! 이걸 몰랐다니! 우리가 여기 온 건 그저 우리 자신을 기분 좋게 느끼고 삶을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해서라는 걸, 그저 우리를 표현하고 재미있어하기 위해서라는 걸 몰랐다니!'

 

암은 그저 표현되지 못했던 내 힘과 에너지일 뿐이야! 그 에너지가 바깥을 향하지 못하니, 내 몸에 맞서 안으로 향했던 거였어! 나는 암은 천벌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것은 암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 나의 생명력에 다름 아니었어요. 그 생명력이 아니타의 장엄하고 강력한 힘으로 표현되도록 내가 허용하지 않았던 거지요.

 

 

 

우리의 '진짜 집' 역시 장소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고 느껴요. 바로 지금, 나는 내가 집에 있다고 느낍니다. 내게는 이제 여기 있든 다른 세계에 있든 다를 게 전혀 없어요. 모든 건 우리의 더 크고 확장된, 무한하며 장엄한 자아가 경험하는 것의 서로 다른 부분들일 뿐이에요. 우리의 진짜 집은 각자 안에 있고, 어디를 가든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을수록 우리는 우주의 태피스트리 안에서 더욱더 중심에 존재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모든 믿음과 불신, 신조와 교리를 놓아버릴 때 무한한 우주는 내뜻과 하나가 되며, 내 삶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일하게 됩니다. 과거의 집착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내 자신의 신성함과 장엄함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치유의 한 형태입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나는 근원이 '되었고',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했어요. 내 확장된 자각 외에는 다른 어떤 근원도 없었습니다. 내가 전체를 다 망라하고 있는 것 같았지요. 믿음이나 신앙 따위는 '앎'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지요. 그건 내가 모든 것이 되는 것과 비슷했어요. 내가 모든 것 안에 존재했고, 모든 것이 내 안에 존재했지요. 나는 영원하고 무한해졌어요.

 

우리 중심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라고요. 우리 모두는 일체에서 분리되어 나왔다가 다시 전체로 돌아갑니다. 나는 내 임사 체험이 그 '하나임'의 단면을 살짝 엿본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신을 내 자신이나 다른 누구와도 떨어져 있는 분리된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나에게 신은 분리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입니다. 신은 이원성을 넘어서 있고, 따라서 나는 내면으로부터 영원히 합일되어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내 물질적 표현은 이 전체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아요.

 

 

 

치유는 우리 개인의 창조적 의도가 우주의 생명력 에너지에 일치되도록 힘쓰고, 그리하여 그것을 '하나'로 볼 수 있을 때 일어납니다.

 

저 세상에는 판결 같은 것이 단연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순수 의식이에요. 저쪽 편에서는 우리가 왜 지금 이런 모습으로 있는지, 왜 우리가 이러저러한 일을 했는지가 완전히 명료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고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때에만 파괴 행위를 하게 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에 닿을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쪽을 선택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임'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그런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것은 곧 자기를 상처 주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카르마란 인과因果 보다는 균형의 개념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나쁜 카르마'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아요. 그런 것은 없다고 믿으니까요. 나는 그저 삶의 모든 측면은 전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거라고 봅니다.

 

나는 또한 우리가 직선적 시간 위에서 여러 생을 연속적으로 살고 있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카르마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나 역시 그렇게 믿도록 배우면서 자랐고요. 하지만 임사 체험 상태에서 나는 모든 생 - 과거 생, 현재 생, 미래 생, 알고 있는 생, 아직 모르는 생, 또 알 수 없는 생 - 의 모든 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치 우리가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바깥에 그 생들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나는 내가 이미 얻고자 노력하는 모든 것임을 알았고,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또 좋거나 나쁘다고 보는 모든 것은 그저 완벽한, 균형 잡힌 전체의 일부일 뿐이에요.

 

 

 

우리는 모두 우주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며,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존재들이지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본래 모습이에요. 자신의 신성을 자각한다면, 자신의 장엄함을 보는 데, 또 자신이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실재하지 않는 이 차원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각자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깨어난 상태에 있었을 때 나는 이 3차원 존재라는 것이 그저 내 생각들의 축적에 불과하다고 느껴졌어요.

 

임사 체험 동안 나는 내 몸이 물질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이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가 진짜 나였고, 몸은 그저 이 생명력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들어오는지' 혹은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에 지나지 않았지요. 마치 3차원 세상은 다른 차원의 것이고, 내 에너지 덩어리가 실재라고 느껴졌어요.

 

 

 

치유는 내 무한한 자아를 통하여 표현하는 데에서, 그리고 내가 근원이나 다른 무엇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아는 데서부터 나왔어요.

 

제가 볼 때는 많은 현대의 질병이 사실상 몸으로 표현된 정신적이고 영적인 병입니다. 마음과 영혼을 다루는 치유법은 단순히 신체만 다루는 접근법보다 헐씬 더 큰 효과를 거둘거예요. 육체적 표현은 훨씬 더 깊은 차원의 무엇인가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 지나지 않아요.

 

마치 무슨 적이라도 되는 양 병이나 증상을 없애야 할 어떤 것으로 보지 말라는 말은 하고 싶어요. 이런 태도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반응이지요. 내가 이해하기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건 몸이 나를 치유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표시예요. 적대적인 태도로 병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나는 결국 그 반대 결과를 낳고 말 겁니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어떤 감정적인 짐도 지고 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매 순간을 최고치로 살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세요.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회복력이 커요. 특히 행복하고 스트레스 상태에 있지 않을 때는요.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게 그저 그들 자신이 되라고 일러주세요. 그들도 완벽하고, 당신도 완벽합니다. 대부분의 고통은 '무엇보다 못하다'는 느낌에서 나오지요. 당신은 어떤 것보다도 또 누구보다도 절대 '못하지' 않아요! 당신은 완전합니다.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 당신은 이미 당신이 찾는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맘껏이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유이고, 여기 이 물질 세상에 와 있는 이유입니다.

 

 

글을 끝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남기고 싶다. 당신의 힘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 당신 자신의 장엄함에 연결되라. 바른 길을 찾는다고 할 때 그 답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보편적인 답은 스스로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임사 체험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내가 이 사실을 늘 명심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암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라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즐겁게 지내는 것, 그리고 자신이나 삶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수많은 영적 전통들이 범하는 커다란 실수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일 치유에 이르는 영적 길에서 필요한 원칙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첫 번째로 꼽고 싶은 원칙은 단연 날마다 최대한 많이 웃으라는 것이 될 것이다. 자기를 보고 웃어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것이 어떤 형태의 기도나 명상, 찬송, 혹은 식생활 개선보다도 우선이다. 유머와 사랑의 눈으로 보면 일상의 어떤 문제도 결코 심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우리의 기도이다. 우리의 삶은 이 우주에게 주는 우리의 선물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또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기쁨 가운데, 당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또 이 세상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당신을 표현하기를.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