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상승

'지상의 천국’ 그 예언이 실현되는 길

빛몸 2024. 3. 1. 11:04
 

‘지상의 천국’ 그 예언이 실현되는 길

* 조화의 개념과 조화를 유지하는 ‘다름’의 본질

* ‘지상의 천국’ 그 예언이 실현되는 길

 

조화는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조화의 무한한 그늘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유감없이 충분히 경험해 봐야

비로소 습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개념이다.

조화의 경험은 처음에는 신기함으로 다가오고

나중에는 단순한 즐거움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그 즐거움으로 규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너희는 인식 전환 다음 단계의 변형이

가까워 왔음을 인식할 것이다.

 

너희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갑자기 그리고 대개 극적으로 깨달을 것이다.

너희가 경험하고 경험하지 않느냐는

단지 너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때 가능성을 제한했던 한계와 구속들이

에너지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아마도 처음 객관적으로 재평가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식할 것이다.

 

갑자기 세상이 ‘예스’ 라고 말한다.

불운을 뿌리치느라 바쁘던 사람이

이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원하는 것의 중점이 자신의 개인적 이득에서

세상의 더 큰 관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옮겨 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너희는 삶의 주요 목표를 바꾸고 기본적으로

인류에게 장기간 혜택을 주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데 헌신하고 싶어질 것이다.

개인의 안녕은 인류를 위한 의도의 부산물임을 알고,

개인의 안녕이 인류를 위한

너의 기본적인 관심을

좌지우지하지 못할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전환 때문에

개인적으로 번영하지 못할 리는 없다.

개인의 번영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상태라면

의도의 초점을 개인의 이득에서

세상의 이득으로 미세하게 옮기는 것이

개인의 번영을 유지하는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평화나 자연 환경의 회복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그런 이타성을

증명하기 위해 꼭 가난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가장 고귀한 목적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물질적 안락을 보장하는 상황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그럼 문제는 무슨 일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슨 의도로 그 일을 하느냐가 될 것이다.

너희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기본적으로

물질적 획득이 목적이고

그 목적에만 집중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과는 오히려 제한적일 것이다.

자신의 안녕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없이

모든 생명을 위한 보다 높은 선에 초점을 맞추고

이타적으로 봉사한다면

모두를 위한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말을 듣는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서 힘들어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 살고 있는

네 인생 외에 너의 길에

많은 측면이 있음을 알아차린 뒤에도 그럴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내면의 변태를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번영에 대한 위 개념들에 대면해 여전히 혼란스러워한다.

일부는 실제로 이 단계에서 자신이 성취해 온 개인적 성장에 대한

일종의 감사의 제스처로 대단한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네 영적 여행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절대로 아무것도 없다.

대가를 치를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또 누구한테 대가를 치를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가 하나임일 뿐이다.

그러므로 네 영적 관심을 증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금욕을 하거나 개인적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그런 선택을 한 존재는 너이고 너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누군가 그렇게 요구한 것도 그렇게 기대한 것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증명’은

‘타인’에게 강하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행동으로

‘타인’과 네가 분리되어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성명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타인’은 없다.

네가 물질을 포기한다고 하나임이 감동받을 리 없다.

하나임은 네 세속적 선택과

아무 상관이 없다.

원하는 대로 선택하라.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즐겨라.

 

진정으로 ‘모든 존재’에게 좋은

최고의 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그 모든 존재의 모든 측면을 연합해야 하고,

너를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하는 하나임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선을 위한 삶을 사는 데 이타적이다 못해

자기희생적인 자세로 접근한다면

아무리 맹렬히 노력해도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너는 ‘삶’으로부터 분리된 증명이 아니라

‘삶’과 결합한 증명의 구현으로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상대를 도울 때 너는 ‘그 상대’를 돕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의 ‘신성 자아’를 돕는 것이다.

그 ‘신성 자아’가 하나임이고

너는 그 하나임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상대’의 부분이 아니다.

 

열심히 인도주의적 행위를 할 때 느끼는

깊은 내면의 만족감은

네 동료 존재들과 비교해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모든 생명’ 의

성스러움을 인식하고

각각의 창조물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생생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네 인생의 주제는 무한에 가까운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 인생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로 전혀 다르지 않다.

너희는 ‘지금 여기’ 에서 전체 공명의 특정 음표만을 가지고

경험의 특별 교향곡을 연주하고 싶을 뿐이다.

‘하나의 신성한 존재’ 의 그러한 측면을 어떻게 경험할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려 있다.

 

금욕을 실천해 내면의 ‘신성’을

인식하겠다고 선택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런 의지 표명의 동기를 분명히 인지하라.

‘다른 사람들’ 에게

신성 존재와 네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너는 그 신성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와 분리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목적 달성에 실패할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숨어

철저한 금욕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네 안의 ‘근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매우 성공적으로 증명한 것임을 알아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가지려고’ 애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고 타인과의 연결을 증명하려 할수록

네가 그렇게 원하는 조화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조화는 오직 ‘합일’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리의 행위로는 불가능하다.

 

네 여행의 지금 단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은

너의 생득권이다.

너는 너 자신에게 무한한 번영을 선물할 수 있다.

단순히 선택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선택에는 고귀한 선택도 천한 선택도 없다.

모두 무한한 가능성 속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메뉴는 무한정인 것이다.

너는 좋을 것 같은 메뉴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을 것 같은 메뉴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신성 자아’도 잊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도

무한한 즐거움이 절대 반감되지 않는다.

 

‘신성 자아’와 연결되는 경험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다.

그때 네 존재의 특정 측면들이

그 상대의 본질 에너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신성 자아’와

너의 연결은

온전히 너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유사한 길을 걸으며

특정 경험을 같이 하더라도

너의 길은 너만의 길로 남는다.

 

너는 ‘신성 자아’와의 연결을 깨닫고 그런 깨달음을 발산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런 너를 곁에서 지켜보며 느끼는 것들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과거에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야 할 의무는 없다.

이 생에서 만난 너의 자식이나 부모조차 너의 복제는 아니다.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도 너의 성장 속도를 모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너희 각자는 전체 세상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날

여러 독특한 변수들을 갖고

이 세상에 왔다.

너희는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많은 사람의 영적 성장에 촉매자로서 활약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고 그것을 실질적 앎으로 만드는 속도는

모든 관계에서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너는 조화를 유지하느라 특정 관계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의 여행이 계속됨에 따라 남을 생각하는

그런 숭고한 상태에서도 어느새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 너와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를 쉽게 탓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너를 위해 연기하도록 되어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하지 마라.

서로 같은 목적을 갖고 나아가는 상태가 조화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조화하고 싶다면

너희 각자의 에너지 영역 안에 충전된 밀도 높은 찌꺼기들을

반드시 모두 표면에 떠올리고 풀어 줘야 한다.

한동안 마모되는 과정이 없다면

모두가 늘 희망하는 부드러운 표면은 불가능하다.

 

이 신성한 인식 전환 여행에서는 아주 가까운 두 사람일 경우

서로가 서로의 성장 목표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둘 사이 좋은 에너지가 흘러

한때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관계가

갑자기 급격한 물살의 변화 속에 던져질 수도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알 때

너는 충돌의 강렬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배후에 깔려 있는 원인을 인식할 수 있다.

관계가 너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상대의 인식 전환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기는 너무 쉽다.

그리고 의지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부를

좋은 반전의 결과를 놓치기도 너무 쉽다.

좋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관계 속에서 진정한 조화를 경험하려면

먼저 둘 사이에 반향하고 있는

모든 나쁜 에너지가 완전히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다른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는 ‘관계’라는 도구를 받았고,

그 도구를 통해 너와 네 내면의 존재 사이 친밀한 관계를 발견할 것이다.

인생의 파트너와 갈등할 때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친밀감

(너와 너의 내면에 있는 존재 사이의 친밀감)에 대한

너의 느낌이 너 자신을 위해

더 강렬해지고 더 생생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파트너라는 촉발자가 없다면

너는 아주 편하게 세상의 모든 것이

아주 좋다고 믿으며 목적 없이 표류할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중대한 문제의 본질을 감쪽같이 숨긴 채 말이다.

너의 파트너처럼 너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너의 파트너처럼

너로 하여금 너의 문제를

생생히 의식하게 자극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런 자극을 받을 때

너는 더 이상 실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영적 여행에서 처지는 것 같은 파트너나 친한 친구는

너와의 신성한 약속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너 자신으로부터 가장

잘 숨겨온 감정 에너지의

충전과 부인의 패턴들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 말이다.

영혼이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턱에 접근할 때

네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바로 그런 네가

오랫동안 너 자신으로부터

숨겨 왔던 것들이다.

불균형 상태에서 여행을

완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힘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면

너는 상황이 안 좋다고 쉽게 관계를 저버리지 않을 정도로

위기의 관계에 정통한 파트너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너희 둘은 너희 둘을 연결했던 최초의 화합의 느낌을

재창조할 특권을 갖고 있다.

상대와의 그런 경험을 통해

너희 둘은

‘연결’ 자체의 본질을 맛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너 자신의 신성한 본질과의 연결 말이다.

그리고 결국엔 너희 모두가

그 ‘신성’과의 연결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것이다.

 

갑옷처럼 입고 온 에고를 벗어 던질 때,

너는 다른 존재를 진정으로 포용하고 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신성 자아’를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서로 똑같이

닮아 갈 필요는 없다.

어느 한쪽이 둘 사이 중요한 문제를 모른 척 덮었다는 뜻도 아니다.

그리고 ‘신성 자아’를 인식했다고 해서

둘이 같이 하려던 일을 꼭

다 완수했다는 뜻도 아니다.

다른 사람 속에서 (나의 너의 그리고 모두의)

‘신성 자아’를 인식했다는 것은

곧 다름의 진정한 의미를 확실히 알아챘다는 뜻이다.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대비’의 깊은 의미에 대한 증명이다.

대비가 없다면 조화도 없다.

 

‘다름’으로 구성된 조화만이 진정한 조화다.

진공 상태에서 조화가 생겨날 리 없다.

물론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구할 때에도 조화는 없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알게 된 너만의 진실을 기꺼이 지킬 때에만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모든 생명’ 과 하나로 공명하게 될 때에만

너희는 조화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다른 존재가 너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보면

조화 자체가 필요 없어지고

조화의 기쁨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임만 ‘존재한다.’

‘타인’은 없다.

그곳에는 너와 타인을 비교하며 조화의 기쁨을

맛보는 데 쓸 만한 도구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곳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모든 의식적 존재들이 지금 귀환하려고 애쓰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다.

너는 조화의 필요성을 초월하고 ‘모든 생명’과 합일해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어있다.

이는 너희가 모두 갑자기 사라진 다음 자아가 영원히 소멸된 비존재의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너희 모두는 자기 인식의 상태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높은 의식 상태로 들어갈 때

너희는 모두 그리고 각자

‘자기 인식’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 온 하나임의 본질이다.

우리가 하나임이다.

우리는 너희 각자의 본질이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

‘모든 존재’ 와의 재합일로 향한

에너지 속에서 길을 잃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합일은 너의 모든 측면과 타인을 ‘신성 자아’로 인식할 때 생겨난다.

아무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임의 신성한 본질을 구성하는 조각들 모두가

특정 존재 수준의 자아의식(정체성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성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인식 전환 과정을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너희들 앞에

이제 하나임 속 합일의 개념이

물리적인 관점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볼 기회가 열렸다.

하나임 속 합일의 개념은 말하자면 경험 여행이다.

일부는 육체를 경험하는 것을 통해 그것을 깨닫겠다고 선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름’을 맛보고 조화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 일부는 어떤 물리적 형태로 드러나는 것 없이

‘존재’의 서로 포용하는 에너지 속에서

스스로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며 동시에

‘모든 생명’과 하나임을 아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경험하는 주체와 경험 대상의 본성이 변할 것이다.

업의 법칙이라는 지상명령은 결국 직선적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온갖 드라마를 낳았던 물리적 영역의 맥락에서

업의 에너지가 완성 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형태를 하고 자신의 ‘신성’을 맛보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더 이상 업의 법칙에 좌우되는 경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세상에서도 지금의 물리적 영역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영적 변형을 경험할 것이다.

너희의 물리적 영역은 영적 여행자에게 목적지를 제공할 것이고,

영적 여행자는 그 목적지를 바라보며 가다가

물리적으로 최적의 조건이 올 때 ‘신성한 본질’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교를 통해 ‘진정한 너’를 인식하기 위해

‘네가 아닌 것’(너의 측면들)을 경험할 필요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자아’의 본성을 완전히 깨닫고

‘모든 생명’ 속에서 하나임을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고양된 차원 속에서

네가 경험하기를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세상의 본성이 그렇다.

너는 이번 생을 다할 때까지

‘업의 대가를 치르라’는 선도를 받지 않았다.

명부의 기록이 다 지워졌기 때문이다.

 

육체를 가진 존재의 수는 당연히 지금보다 확실히 적어질 것이다.

하나임의 영원한 본질 속에 남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존재들이 육체 모험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가진 존재들이,

갈등에 휘둘리거나

갈등의 당연한 여파로 인해

상처받지도 않는 신성한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중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상당히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너의 세상을 구현하는

의식 존재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금’ 세상의 마지막 시기에 와 있다.

 

집단으로 행동하며 너의

이 생에서의 경험을 위한

현실 그 에너지 진동을

유지하게 도왔던 너의 측면들은,

다른 의지의 에너지로 옮겨 갈 것이다.

너는 그런 현실의 물리적 조건들을

더 이상 인식할 수 없는 곳으로 나올 것이다.

너는 상승할 것이다.

 

현실은 오직 너희 각자가 경험할 때만 ‘존재한다.’

“네 세상은 본질적으로 현재 너의 의식이

만들어 내는 종합적 비전의 반영일 뿐이다.”

다가올 시간에는 네 의식의 성질이 바뀔 것이다.

따라서 그 의식이 반영되는 세상도 바뀔 것이고,

너는 그 바뀐 세상 안에서 ‘삶’을 경험하기로 선택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진정한 조화의 에너지를 사방으로 발산할 것이다.

다가올 세상에는

비물질적 영역의 고양된 에너지 진동들이 퍼져나갈 것이고,

따라서 그 다가올 시대를 위해

너희 역사가 예언했던 

‘지상의 천국’이 구현될 것이다.

저 하늘 어딘가 있다는 전지전능한 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 각자가 ‘신성의 의도’로 조화 속에서

‘신성의 의지’를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바로 네가 자신을 하나임으로 인식하고

‘하나’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존재이다.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