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상승

제151장.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빛몸 2017. 8. 22. 08:28

151.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내 형제 옷타비오 신부여, 쓰시오. 나는 성 요셉 콧토렝고(이탈리아 토리노 부근 브라에서 출생. 19734년 시성. 주된 사목 활동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 각종 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일이었고, 이 목적을 위해서 토리노에 '작은 집' 이라는 의료 시설을 세웠음. 축일은 4월 30일) 이오.

 

  인간은 원죄와 거의 무한정 불어나는 각자의 본죄로 말미암아 분별을 잃은 채, 거의 전적인 어둠 속에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태어나 자라며 살아가다가 사라지는 존재이오. 인간을 에워싼 어둠 속에 희미하나마 가까스로 빛이 보인다면 그것은 계시된 근원적 진리에서 나오는 빛이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인 천상의 크나큰 실재들을 환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식견이 높은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오.

 

  첫째 가고 하나뿐인 큰 실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온 우주에, 깊은 바다 속과 땅 위와 공기 속 어디에나 설레며 고동치는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오. 우주에 생명이 충만하고, 곳곳에서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

 

  오! 어리석고 눈먼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당신 영광을 위하여, 또한 그대들을 그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생명의 기적을 행하시건만, 그대들은 이 기묘하고 놀라운 하느님 사랑의 열매로 살고 존재하며 또 그것을 누리면서도 이 기적을 보려고 하지 않는구려!

 

  우주 창조는 사랑의 행위였고, 모든 생물의 창조도 사랑의 행위였고. 지상 모든 생물 가운데서 인간의 창조는 사랑의, 특별한 사랑의 행위였소. 사람만이 그의 창조주 주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사람만이 다른 모든 생물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오. 홀로 사람만이 지상 모든 생물의 왕이요 지배자로서 우주적인 사명을 띠고 창조되었고, 사람만이 하고자만 한다면 지상 모든 생물의 감사를 하느님께 전해 드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소.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모든 생물의 존속 원리이고 일차적인 원인이시라면, 모든 피조물이 그들 자신의목적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일체를 마련해 주시고 그들을 보존하며 이끌어 가시는 것도 그분이 아니겠소? 과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고 계시오. 복음서에 보면 하느님께서 들꽃에게 입을 것을 마련해 주시고 들백합을 화려하게 차려 입히시며 공중의 새들을 먹여 주신다는 말씀이 있고(마태 6,26-29). 하물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반영하는 존재인 그대들에게야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지 않겠소?

 

  어디에나 생명이 풍성하오. 이 생명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만인의 존중을 받아야 하오. 인간 이성의 선용과 신앙이, 그리고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가 이를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오. 그러나 이 어둡고 야만적인 물질주의의 세기만큼 인간의 생명과 인간보다 열등한 생물들의 생명이 이처럼 심한 모욕을 당하고 짓밟힘과 죽임을 당한 적은 일찍이 없었음이 사실이오. 인간은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 듯이 하느님께 대항하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에 대항하며 스스로를 높이 세우고, 강한 본능으로, 야만적인 반항 본능으로 하느님의 법을 어기면서 사람을 죽이고,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법에 의거하여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거하고, 종류가 수없이 많은 폭력을 취둘러 생명을 죽이고, 피조물의 왕이요 우주의 제관인 인간 자신의 위치를 짐승보다 못한 상태로 격하시키고, 더없이 악한 그 본능에 있어서는 기이하게도 짐승을 뺨칠 지경이 되었소. 이 모든 짓을 자행하면서 인간의 '권리' 와 '법' 과 '자유'의 이름으로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오.

 

  사탄의 속임수가 그대들을 여기까지 데려왔소. 죄 문명의 어두운 혼돈 상태가 그대들을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몰고 온 것이오.

 

 

생명의 창조주를 끌어당길 만큼 강력한 자석인 믿음

 

  옷타비오 형제여, 나는 그대에게 하느님 '사랑'의 놀라운 선물인 생명에 대해서 말했는데, 이 사랑은 본성상 생명을 보존하여 생명이 그 자체의 궁극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오. 하느님 섭리의 신비 안에 작용하는 초자연적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고, 여기에서 믿음은 강력한 자석이 되오. 어찌나 강력한지 생명의 창조주를 끌어달길 수 있는 자석이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소?) : "너희에게믿음이 있다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마태 21,21)

  여기에서는 행위가 말보다 더 가치가 있소. 토리노에 있는 "콧토렝고의 작은 집"을 찾아간다면, 이 곳은 소외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이거니와, 사지가 멀쩡하건 그렇지 못하건 모든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분명히 볼 수 있고, 그 모든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얼마나 끊임없는 기적으로 개입하시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시지만, 특히 누구보다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오. 하느님 섭리의 신비여!  살아 있는 신비여!  과거나 현재나 성인들 중에서 하느님 섭리의 '능력' 과 '자비' 를 체험한 적이 없는 성인이 과연 있겠소?

 

  형제여, 이 주제에 대해서 내게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소.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듯 하니 말이오.  이제 기도하리다.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은총을 주시기를, 그대에게 강복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신뢰를 잃지 마시오! 그대와 또 그대들은 하느님의 사업과 하느님 섭리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