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삶의 모든 문제들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서부터 비롯된다.
삶이 있기에 늙음과 병과 죽음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갖고 싶은 물건과 부귀에 대해서,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고,
만났지만 헤어져야 하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고, 하고싶지만 할 수 없고, 하기싫어도 해야하는 고통이 일어난다.
이 모든 고통들과 살고자 하는, 그리고 살기 싫다는 갈망이 뒤범벅이 되어있다.
살기 싫다고 죽을 수 있는가? 아니, 영원히 삶을 끊어낼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삶은 그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원하는 갈망이 있음으로 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죽고자 하는 갈망은 역설적으로 다시 삶을 낳는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윤회라는 것이다.
끝없는 갈망이 있기에 끝없이 삶을 계속한다.
지지고 볶고 사랑하고 집착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 잃고, 슬퍼하고,
증오하고, 비탄에 빠지고, 남을 속이고, 속고,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적당히 둘러대고, 회피하고, 저항하고,
욕하고, 욕먹고,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 여전히 갈망한다. 실낫같은 희망을 가진다.
뭔가 나아지기를 여전히 '갈망'한다.
하지만 갈망은 결국 많은 고통과 약간의 행복으로 점철된 삶을 낳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면에서 조금 나아졌다고 치자.
조금은 더 행복해졌다고 치자. 물론,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다. 노력해서 나아지지 않을리가 없다.
그 끝은?
결국 그 삶은 몸과 함께 부수어진다. 중요한 것은 몸이 부숴지면서 마음도 부숴진다는 점이다.
흔히 윤회를 믿는 이들은 영혼이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현재의 자신이라는 개성체가 존재해서
다른 육체의 옷을 입고 지금의 '나'라는 성격과 유사한 다른 인간이 될 거라고 착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삶을 만드는 것이 뭐라고? 갈망일 뿐이다.
몸이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지면서 개성이 윤회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직 살고자 하는,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만이 남는다.
그리고 인연이라 불리는 조건에 얽힌 삶이 일어난다. 갈망이라는 연료와 땔감을 바탕으로 해서.
갈망이란 무엇인가? 욕망과 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뭔가 하고싶고, 되고싶고, 갖고싶다는 것이다.
하고싶은 욕구를 참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참아내서는 안된다.
물이 끓는 주전자의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과 같다.
주전자의 코와 뚜껑을 다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물이 끓는 주전자 그 자체로 하나의 폭탄이 된다.
이런 인간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위험해진다.
연쇄살인범, 묻지마범죄... 이런 사람들이 화도 잘 못내고 겉으로 봐서는 온순해 보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성격적으로 내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든 환경의 산물인 셈이다.
결국 욕구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달성되어야 한다.
점잖게 명상만 한다고 오랜 세월 앉아만 있는다고 영적으로 진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대부분의 직업도 없이 명상과 영적추구를 한답시고 떠도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되는 이유가 그런데 있다.
붓다가 진정 무상정등각 - 최고의 깨달음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런데 있다.
그는 부와 권세와 명예와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욕구를 충족시켰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욕구를 확실히 충족시킨 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은 오히려 참된 명상에 가깝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에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 잘 살펴야한다.
그리고 그 욕구가 정당하다면 그것을 해야한다. 직면해야한다. 충분히 경험하고나면 그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성과 사귀고 싶다면 원이 없을만큼 충분히 사겨봐라. 돈을 벌고싶다면 열심히 벌어봐라. 갖고 싶다면 가져보고,
하고싶다면 미리 '하지못할 거'라는 생각에 미리 겁먹지말고 오직 하고싶다는 생각만 하며 어떻게든 이루어봐라.
철저히. 집요하게. 오직 그 욕구에만 집중하고 불살라버려라!
그러면 욕구는 사라진다. 미련도, 집착도 사라진다.
욕구가 사라진다는 것은 갈망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결국 그 연장선에 놓인 삶 그 자체에 대한 갈망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연료와 땔감이 사라진 곳에는 타오르던 고통의 불도 사라진다.
아울러,
기명상을 통한 정화와 비움의 과정은 때로 내면의 에너지와 카르마를 가속화시킨다.
즉 훨씬 더 빠르게 연소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욕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아왔다.
욕구는 결국 최대한 빠르게 경험되고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된 명상이란 오직 가만히 앉아서 눈만 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격렬하게 경험하고 부딪치면서 자기 내면의 꼬이고 얽힌 기운을 살피고 돌리고(回路, 動作),
연소시켜서 풀어내고 소멸시켜라.
물론 그런 동적인 과정에 대한 균형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적인 고요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필요도 있다 - 氣冥想.
2012. 6. 7.
明濟 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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