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분이 상위자아에 대해 질문을 드리기에 시간이 허락되므로 간략하게 중요한 정보만을 말하도록 하겠다.
무작위로 보여지는 인터넷의 단점으로 인해 개별적인 자세한 사항들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것이므로
간략하게 일반적인 사항들과 통로 연결되는 방법등을 정리해 말하고자 한다.
진아라 표현하건 상위자아라 표현하건 신적자아라 표현하건 표현이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뭐라 표현하건 말하고자 하는것은 하나임을 알도록 하자.
1. 상위자아(신적자아)의 개념
이것은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그토록 갈망한 신, 즉 만나고자 했던 인격적인 하나님이라 말하는 실체이기도 하다.
각자가 하나님 인것으로 인간의 지식등으로 아는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면된다.
자신의 상위자아 조차 만나지 못한 인간들이 우주를 말하고 외계인들이 전하는 찌꺼기 지식만을 바탕으로
신과 우주와 근원을 안다고 하는것은 넌센스다.
영성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자들도 그런 지식등을 모르는 사람들과 영적인 수준에서 다를바 하나도 없으며
도리어 영적인 의식 레벨에서는 더 뒤쳐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불쾌하겠지만 상위자아 입장에서의 인간을 표현해 보도록 하겠다.
냉철히 말한다면 인간들은 상위자아의 일종의 정보 데이터나 다름없다.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 가상게임을 즐기는 게임상의 아바타 인셈이다.
왜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고난이 있고 모험이 따르는지 한번 잘 파악해 보기 바란다.
인간들 역시 영화 게임등을 통해 많은 가상체험을 하길 원한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우는것,많은 비극적 전쟁과 액션영화를 보길 갈망하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당신이 아무 사건도 없고 마냥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는 지루한 영화나 게임을 원치 않듯 당신의 상위자아도 마찬가지 이다.
그 시나리오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불행이 닥쳤을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거나
맹목적으로 운명에 순종하는 일밖에는 인간이 할수있는 일은 없다고 본다.
운명을 개척한다고 하는것도 역시 정해진 시나리오임에 다름아니다.
자신의 전생이라 말하는것은 일종의 상위자아 입장에서는 정보 데이터로서 지금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 보면 된다.
아바타 교체인것으로 하나의 상위자아가 몇개의 아바타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인간은 상위자아가 정보 수집을 위해 파견한 아바타로 매번 배역을 바꿔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상위자아라 해도 각 차원마다 또 역활과 위치가 다르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2. 상위자아와의 소통자리
인간들에게 있어 상위자아와의 소통 자리이다.
인간들이 말하는 5 차크라 (목) 조금 밑부분 4차크라 (가슴)위 10센티 정도 윗부분 정 중앙 위치에 있으며
인간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4.5 차크라 자리가 막혀있다.
태어나 아이일땐 누구나 열려있지만 점차 커가면서 닫혀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들이 머리를 사용해서 지식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항상 신(스스로의 자신)의 참뜻을 모른채 방황하며 살게되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는 표현은 뭔가 자신의 내부에서 말하고자 하는것이 막혀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인간들에게 다시 원활히 열리게 하기위해서는 특정한 아주 강렬한 사건들이 필요하다.
가슴이 열린다..라는 이 경험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가슴이 무너진다.라는 표현은
어찌보면 가슴이 열린다 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다. 극심한 감정으로 숨이 막힐듯한 느낌과 함께
목 밑부분 4 ,5차크라 중간의 꿈틀댐을 느낀다면 상위자아와의 소통 통로가 열리려고 한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극심한 기쁨으로도 가능하고 극심한 무너지는 슬픔으로도 가능하다.
아마도 지금 시대는 많은 인간들이 대 재난등을 통해 인간의 지식과 두뇌의 한계를 느끼고
다시 신적 자아인 자신의 본래 의도와 만나 이 자리가 활성화 되는 경우가 많을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순간순간 살아나가면서 상위자아가 찌르는 이런 경험들을 중요 순간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없기 때문에 곧 통로를 닫아버리고 잊어버리게 된다.
통로가 열리고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내면의 소리..그것이 바로 상위자아와 소통이 시작되는 열쇠이다.
인간에게 그 느낌은 껍질이 깨져나가듯 순간적으로 처음에는 벅차오르는 감정 또는 두려운 감정을 동반한다.
특정한 사건에서 심하게 두근거리지만 온몸이 감전 되는듯 확신이 오는것이다.
소름이 끼치는 현상처럼 등쪽의 쿤다리니가 함께 불같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그때 무시하지 말고 그 감정들을 잡아내 통로를 열고 하나씩 그 느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나가야 된다.
이것이 인간들이 알아야할 상위자아 참나.진아와 소통할수 있는 통로를 여는 순간적으로 감춰진 열쇠이다.
예수가 말한 각자의 가슴속에 성전이 있다 라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종교를 믿는분들은 지식적인 숭배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그런 통로가 열릴때마다 자신의 본성인줄 모르고
기도할때마다 응답을 준다고 생각할뿐 감히 그것과 하나될 생각을 못한다. 기독교에 이런분들은 넘쳐난다.
인간이 상위자아와의 합체를 막기위해 예수의 말을 각색하여 여호와라는 이름을 결합시킨 종교라는 방해틀을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예수는 여호와를 언급한적이 결코 없으며 도리어 당시에도 여호와 숭배자들에게 핍박당했고 살해 당했었다는 사실을 알자.
일단 통로가 뚫리고 소통이 시작되면 여기서부터 자신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 시작되므로 일단 통로까지만 설명하였다.
3. 상위자아와의 합체
현재는 모든 방법을 통해 자신의 상위자아와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채널로서 그냥되는 경우는 그 전에 미리 충분히 자신도 모르게 신과 소통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경우이다.
많은분들이 현재 자신의 상위자아와 소통을 하고 있지만 합체를 향해 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항상 상위자아와 인간적 자아가 부딫치고 때론 목숨을 내건 투쟁을 한다.
하나하나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을 따를때 점차 인간적 에고는 줄어들고 상위자아와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인간들이 깨닫는다라고 말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상위자아와 합체하면서 자신의 의문사항들에 대한 그 모든것들이 차츰 저절로 해결됨을 느끼게 된다.
상위자아와 합체될시는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모든것과 우주의 현상등을 저절로 알게된다.
나중에는 호흡도 이 자리와 함께 하게 된다. 몸이 상위자아의 에너지 격자망에 둘러쌓여 가볍게 떠다니는것을 느끼게 된다.
육체의 모든 감각들이 달라지며 인간사 어느것에도 두려움 이란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정보따윈 없어도 스스로가 저절로 모든 우주의 법칙과 진리등을 알게되는것이고 마치 거대한 힘에 안겨 다니는 느낌을 준다.
4. 왜 대부분의 인간은 상위자아와 만나지 못하는가.
인간은 왜 그럼 여지껏 상위자아와 만날수 없었던 걸일까..
그것은 인간들이 모든 정보들을 언제나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릴경우 다른 의문을 찾아다니는 쉽게 말해 같은 자리를 도는 장난을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자신의 인간의식에서 원하는 달콤한 정답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열심히 찾아 다닌다.
그게 대부분의 영성 활동이라는 행위이자 인간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이다.
즉, 실제 의식상으로는 인간 의식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채 더 많은 정보들을 얻기만을 원한다.
피아노 교본을 수십권 눈으로 읽고 악보를 수백권 외운다고 해서 피아노를 칠줄 알게 되는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이런 정보 역시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에게는 한번 읽고 지나가는 심심풀이 글이 될것이다.
그 지식이란게 실제 의식확장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것을 아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나올수 있었음 한다.
영성이란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 말하는 것으로 실제 신의 의식이라는 피아노를 한음이라도 쳐야 되는것이다.
상위자아와의 소통없이 인간 의식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만을 원한다면
수백만번의 윤회를 거듭해도 깨달음이란 허상만을 쫓게 된다.
기독교의 믿음과 명상 ,불교의 수련등은 인간적인 평안은 줄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자기자신 상위자아와 만나고 합체하는것과는 수준 차원이 다른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적 경험을 원하는 상위자아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윤회의 바퀴를 계속 돌뿐이다.
역사적으로 수천년간 수많은 승려와 종교등에서 충분히 증명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방법등을 통해 근원으로 돌아가고 신이 될수 있었다면 지금쯤 붓다와 예수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어야만 한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극소수가 신성을 살짝 맛볼수 있었을뿐 같은 자리를 뱅뱅도는 추종자들만 수천년간 양상했을 뿐이다.
실제 모든 영성책을 하루종일 읽고 수십년 모든종류의 수도를 한 스님이 있었다.
항상 책을 끼고 살고 모든 종교 영성 책을 외우고 있어 별명이 걸어다니는 도서관 이었다.
겉으로는 평화를 얻고 깨달음을 얻은듯 보여도 아직 한번도 상위자아와 연결되지 못한것을 알고 그 문제를 파헤쳐 상위자아와 함께 살짝 찔러보니 울어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스님의 내면에 감춰진 어릴적 깊은 상처들이 쏟아져 끝없이 눈물이 나오며 통곡 하는것을 볼수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스님 상위자아의 에너지에 나도 처음으로 산들 바람에 몽롱한 감촉을 느끼며
함께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송신만 할줄알지 수신하는 채널링은 할줄도 모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트랜스 상태의 채널링 이었다.
그동안 상처를 덮기위해 했던 수십년간의 수도와 공부가 실제로는 상위자아 와의 연결을 가로막는 역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 그 스님은 상위자아와 소통 통로가 뚫려 전기 에너지에 감전되듯 상위자아와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어떤 깨달음의 여정을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대방 상위자아와 수신이 가능한 채널러들이 타인을 위해 도움될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인간들이 지식이 없어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가슴을 닫고 상위자아와 단절된채 있는것이다.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가슴을 열기 시작할때 4,5 차크라 자리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며 그 중간지점에 위치한
인간들이 하나님 이라 말하는 참 나와의 소통이 시작된다는것만 명심하자.
그러면서 인간적 자아 에고와 상위자아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며.
그런 과정들에서 실제 깨달음이란 것이 하나하나 나오게 된다.
5. 신의 의식은 인간의 의식과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상위자아와의 대립은 커녕 아직 그 실체가 뭔지 파악도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영성인들 또한 공부한 지식으로 말로만 우리는 신이다..진아 어쩌고 떠들어 대지만
지식으로 무장한 의식은 자신의 실제 진아와 소통조차 못하고 통로조차 알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 의식인 것이다.
모든 상위자아와의 대립을 마치고 자신의 상위자아의 뜻과 인간적 자아가 일치할때 인간은 비로서 신과 하나가 된다.
인간의 의식과 신적 자아와의 의식간의 격차는 역사를 보면
여지껏 왜 인간들이 신적 자아와 합체하지 못하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때론 자신의 신적의식의 의도가 인간적인 죽음이 될수도 있다.
결코 인간의 의식에서 본다면 신의 의식세계가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예를 들겠다.역사적으로 인간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며 신적자아와 함께했던 강력한 에너지 무버들의 경우를 보라.
예수의 경우 물론 정치적인 이용과 맞물려있긴 하지만 3 년간의 설파로 모든 인류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지막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릴것을 알고 피할수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인간적 자아와 신적자아가
끝까지 갈등하는 모습을 알수있다.예수의 신적자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난다이다.주로 안내하는 역활이다.
현대 문명의 기틀을 이룩하고 유럽을 창조한 카이사르의 경우는 항상 불시에 죽음을 맞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카이사르의 경우 상위자아는 대천사 미카엘이며 알렉산더의 경우는 대천사 메타트론 이다.
셋 모두 살해 당하는 방법으로 차례대로 할일을 마치고 상위자아의 의도대로 인간계를 떴다.
천지공사라 칭하는 지구의 3,4 차원간 에너지 작업을 했던 한국의 강증산의 경우는 자신이 할일을 마치자
스스로 조용히 곡기를 끊고 자살하는 방법을 택한다.
강증산의 경우 신적자아에 대해서는 한국인 이므로 현재 강증산 종파도 많고 논란의 여지가 있기에 밝히지 않겠다.
아니 모른다.그들이 말하는대로 강증산 인간 자체가 상제라 불리는 초 우주적 존재라 하자.
어쨌든 역사적으로 모든 강력한 에너지 무버들은 모두 짧은기간 자신의 일을 마친후 바로 인간계를 떠났다.
이것은 상위자아의 뜻이 인간세상에서 할일을 마칠시 인간사에 더이상 관여 하지 않고
지저분한 개인적 카르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한 조치임을 알기에 인간적 자아가 승낙하게 되는것이다.
물론 모두 죽고나서 인간들에게 신으로 대접받곤 하지만 실제 인간적인 삶은 편안과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앞서갈수록 상위자아의 뜻은 인간의식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의 경우가 더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상위자아의 뜻과 우주의 법칙을 아는것은 인간의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일수도 있다.
자신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영성을 도피처로 찾는 이들에게는 절대 넘지못하는 벽이 층층이 있는것이다.
그렇게 상위자아와 함께 인간 의식의 벽을 하나씩 깨부수고 조금씩 나아갈때
인간도 하나의 숨쉬는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로 점차 나아가게 된다.
근원까지 연결된 의식확장의 길로 상위자아가 그렇게 자신과 우주와 하나 되라고 이끌게 되는것이다.
지금이 인간들에게는 바로 인간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인간이 자신의 근원 하나님과 만날 그때이다.
그렇게 모든 여정을 마치고 상위자아와 합체해 근원까지 연결된다면 자신있게 말하라..내가 바로 그이다..
나는 존재하며 존재하는 모든것이다.
I AM... ALL THAT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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