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턴 : 여기서의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네요. 이 사랑은 완전한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서와 수업에서 똑같이 말하듯이,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완벽한 사랑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모두를 포함 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아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 자신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할 겁니다. 모두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반복해도 좋을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라고 하면서 이를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피상적인 가르침에 그치고 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 방식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업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수업은 신의 완벽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수업에서 특별한 사랑이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기로 선택한 몇몇 개인에게만 한정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특별한 미움의 관계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적 죄책감을 투사하기 위해서 택한 관계 말이에요. 물론 애증의 관계를 갖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별한 사랑과 특별한 미움의 관계에서, 당신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분명히 더 쉽고 미워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람, 모든 것을 예외 없이 용서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들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완전한 사랑입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사람이라 여길 수도 있어요. 심지어 자신들이 지성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개리,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사랑 없는 지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언급하는 진정한 사랑은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라 성령의 사랑입니다. 성령은 이 꿈의 수준에서 신의 대리인입니다. 성령이란 당신이 본래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모든 곳에서 오직 죄 없는 순수함만을 봅니다. 성령은 모든 이를 자신과 똑같다고 보기 때문이죠. 바로 이 때문에 용서가 성령의 강력한 교구(校具)인 것입니다. 용서는 완전한 사랑을 경험하도록 인도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전부로 존재하는 경험입니다. 수업이 말하듯이 “신은 당신의 아들이 전체에 못 미치는 것에 만족하기를 뜻하시지 않는다”(T307/T-15.ⅲ.4:10)
개리 : ...용서의 세 단계, 그 첫 단계는 세상에 반응하길 멈춰야 합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실재성을 실어주는 것이죠. 당신은 에고로써 생각하기를 멈춰야 합니다.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자신이 판단과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거든, 혹은 화가 나거나 불안해지거나 심지어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진다면 바로 그것이 에고임을 확신해도 좋습니다. 성령이라면 그러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사실 다른 것보다는 감정을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가장 크지요. 물론 당신의 감정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만요.
일단 에고와 함께 생각하기를 멈추고 나면 이제 당신은 성령과 함께 생각하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거든요. 에고와 성령은 상호 배타적이며 둘은 저마다 하나의 완전한 사고체계를 대변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에고로부터 성령으로 스위치를 전환하고, 이것이 바로 거룩한 순간(Holy instant)입니다.
그 상황에서 성령은 당신에게 어떻게 조언할까요? 그 상황을 실재화하기를 멈추라고 합니다. 당신의 판단과 반응이 그것을 실재화합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그들이 당신 눈에 죄인으로 보이는 것은 죄의 책임이 당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기를 당신이 바랐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투사를 뒤집어야 합니다. 죄의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은 당신에게도 죄의 책임은 없지만 말입니다. 죄의 책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기 자신을 실재화하려는 에고의 의해 날조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용서의 두 번째 단계는 에고가 이 모든 것을 지어냈다는 것과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시공간의 우주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공간의 우주라는 투사물이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당신은 그 우주의 희생양이 아닙니다. 희생양이 될 때는 무기력하지만 원인의 자리에 서면 엄청난 힘이 생기죠.
그런 다음 세 번째 단계는 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교재> 마지막 장 마지막 과에서 말하듯이 다시 선택하는 것이지요. 몸을 넘겨보고 영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실재화하기를 멈추고 베일을 지나쳐 그 너머의 진실을 보는 것입니다. 그 진실이란 모두가 죄 없이 순수하다는 것이니, 신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죄가 없습니다. 모두가 성령에게로 평화로이 풀려납니다. 연습을 계속해 나가노라면 이 과정을 점점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이것이 당연한 사실로 자리 잡아가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제 당신은 세상이 당신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에 계속 익숙해지다 보니, 예전의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이제 용서는 마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개리 : 맞아요. 불교에서 말하듯이,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자기가 독약을 마시고는 다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요. 모든 판단은 진정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이요. 모든 용서도 진정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입니다.
[출처] [레너드] 용서의 3 단계,사랑은 아무도 잊지 않았으니,개리 레너드,기적수업|작성자 휴먼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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