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여러분은 다른 누군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대체로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상대방의 에너지와 꼭 파장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면에서 느끼고 있는 것과, 여러분의 생각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돕고자 하는 사람의 에너지적인 실체와 파장을 맞출 때, 비로소 여러분의 도움이 결실을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성적인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그 개인이 필요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내면의 고요하고, 직관적인 자리에서, 상대방을 보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원성에서 벗어나, 내면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연민으로 충만해지도록 하세요. 가르침을 전하고, 치유를 할 때, 정말로 상대방의 현존으로부터 영감을 받기를 바랍니다.
해결책은 대개 의외로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연민입니다. 해결책을 제공하기 위해, 권위 있는 얼굴을 하기 위해, 여러분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얼굴을 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례로 돌아가 보기로 합시다. 자녀들이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부모가 있다고 합시다. 경험상, 부모들은 대개 어떤 행위에 따른 결과들을 아이들보다 더 잘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앎에 근거하여, 부모들은 종종 자녀들에게 주의를 주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도와주고자 하며, 부모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도록 조언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들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내면의 고요하고 직관적인 자리에서, 아이들과 파장을 맞추게 되면, 부모는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뭔가라는 것을 아주 흔히 알게 될 것입니다. 대개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부모의 신뢰와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는 말입니다. "나를 믿어주세요. 나를 내버려 두세요. 실수를 하고, 넘어져도, 나를 계속 믿어주세요.“ 신뢰의 자리에서 자녀와 연결될 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직관에 따르라고 용기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자신에게는 기분 좋게 느끼면서, 여러분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아이에게 어떤 것을 하게 한다면, 아이는 여러분의 태도를 불신하게 되고, 이로 인해 더 심하게 저항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때, 아이들은 여러분을 “읽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여러분의 말 뒤에 감춰진 감정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숨어 있는 여러분의 두려움 혹은 판단을 아이들이 감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대개 여러분의 말이 아니라, 이러한 감정에 반응하게 되며, 여러분의 말이 전혀 합당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아주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들의 숨어 있는 감정들을 인식하지 못하며,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아이들과 연결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부모는 아주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진솔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선입견을 버리고, 아이의 감정적인 실체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아이의 근심과 걱정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대화의 다리가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례가 아주 흔하고, 연관되기가 쉬우며, 그리고 아이들을 신뢰와 개방적인 마음자세로 지원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여러분의 생각과 바램 그리고 욕망을 버리고, 타인들을 정말로 내버려 두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열린 공간으로, 그리고 참되며 진심 어린 이해로 감싸주는 것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치유해주는 것입니다. 대개 타인을 정말로 도와주는 것은 일을 있는 그대로 전적으로 수용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그들을 위해 사랑과 연민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의 함정
교사나 치유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여러분이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함정은 가슴에 있습니다. 가슴은 많은 에너지들이 만나는 곳입니다. 가슴의 중심(혹은 차크라)은 하늘과 땅 사이에, 그리고 높고 낮은 에너지의 센터들 혹은 차크라들 간에 가교(架橋)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슴에는 기원이 서로 다른 에너지들이 모이게 되며, 가슴은 이러한 에너지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단일성(하나됨)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가슴으로 인해, 여러분은 이원성을 초월할 수가 있으며, 사랑과 연민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에너지와 파장을 맞추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머물고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슴입니다. 또한 가슴은 감정이 이입(empathy) 되는 중심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형태의 영적인 가르침과 치유에 있어, 가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타인들의 기분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타고난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타인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될 때, 이러한 능력은 여러분에게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과 관련된 중요한 함정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너무 강하게 느끼게 됨으로써, 자신의 감정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감정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타인들의 에너지를 너무 심하게 흡수함으로써, 자기감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타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게 됨으로써, 이들을 몹시 돕고 싶어 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타인들의 에너지가 혼합됨으로써, 자신의 짐이 아닌 타인들의 짐을 짊어지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불균형이 생기게 됩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여러분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타인들을 돕는데 애쓰게 될 때, 누군가의 고통에 휩쓸리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경계선을 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내준 에너지는 여러분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여분의 에너지는 다른 사람에게 가게 되겠지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에너지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고객들은 이 에너지를 받아들이거나, 자기의 것으로 통합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 에너지에 놀라게 되거나, 아니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치게 되고, 짜증을 내게 되며, 결국 좌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통해, 여러분은 자신이 너무 많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객을 만나거나, 누군가 돕고 난 후, 그때마다 공허감이나 좌절감 혹은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균형 및 중심이 잡힌 상태에서 가르침과 치유를 하게 되면, 여러분은 편하고, 생기가 넘치며, 직관에 따르게 됩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끝나고 난 후, 여러분은 쉽게 자신의 에너지를 회수하여, 다시 접촉할 수 있게 됩니다. 상대방을 보내고 난 후, 두 사람의 에너지의 장들 간에는 어떠한 끈이나 줄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좋아지거나, 행복 해지를 간절히 바라게 됨으로써, 에너지적으로 여전히 상대방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러한 연결은 여러분의 에너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고객에게 집착함으로써, 그들의 감정 에너지를 아주 강하게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고객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두 사람 간에는 감정적으로 양방향의 상호 의존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고객은 여러분을 의지하게 되며, 여러분의 행복(well-being)은 그들의 행복에 좌우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에너지들이 서로 얽히게 되는 것은 고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여러분도 무기력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돕고자 할 때, 이런 일이 왜 아주 쉽게 일어나게 되는 걸까요? 특히 빛의 일꾼들은 이러한 함정을 왜 피해 가기 힘든 걸까요? 치유하고, 온전하게 하며, 세상을 더 좋게 하려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욕구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여러분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망은 빛의 일꾼 시리즈 (이 책의 제1부)와 관련하여, 부분적으로 여러분의 영혼의 역사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르침과 치유를 이 세상 속으로 가져오려는 내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주려는 성향은 내면의 고통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여러분은 이러한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주는 것에 지나치게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슴속에 고통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러분은 새로운 존재 방식, 즉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신성과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의식의 단계로 다가서고 싶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다 더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현실이 지구에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에 육화할 때, 여러분은 에고가 작동하는 방법을 탐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에고를 탐구하는 데에는 이제 이골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대한 고대의 노래에 부응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평화, 기쁨, 존중 그리고 유대감을 되찾도록 돕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여러 생에 걸쳐, 여러분의 영혼이 지닌 빛을 지구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많은 저항과 반대에 부딪치게 되면서, 여러분의 감정체는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로 오는데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예전의 정열의 꽃은 시들지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면에 지니고 있는 고통 때문에, 여러분은 섬세하고, 민감한 꽃들과 같아, 자라서 번창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토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필요로 하는 토대는 지구에 단단하게 안착하고 있다는 느낌이며, 그러한 느낌이 여러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안착한다는 말은 지구의 실제 상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인식하기 위해, 그리고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이 다루어야 하는 원소(元素)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영성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정신이 몽롱해 있거나, 아니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이 되기도 합니다. 대개 여러분은 지구라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여러분이 지닌 영혼의 에너지가 여기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오로지 지구를 통해, 그리고 지구의 원소들을 편하게, 마음 놓고 대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자신의 느낌에, 즉 어떤 것이 자신에게 옳은 것인지에 대해, 자신만의 느낌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여러분은 에고 혹은 여러분과 타인들을 구별 짓는 개별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에고는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에고로 인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영혼 에너지를 물질의 현실 속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개체성을 “더 큰 선(善)”에게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에고를 없애기 위해, 여러분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지닌 빛을 자신의 에고에게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에고가 자신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나타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 속에 지니고 있는 고통 때문에, 옛 것에 대한 지겨움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지구라는 약속의 땅에 다가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변화를 강요하거나,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는 것에 지나치게 열중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의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더 큰 명분을 띨 수도 있으며, 열정적으로 타인들의 행복을 보살펴주는 형태를 띨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의 중심에는 초조함과 마음의 동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생기가 넘치고, 열정적이며, 몰두하게 되겠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실망하게 되고, 에너지가 고갈됨으로써, 기진맥진해지고, 화도 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치유사가 되는 길에서의 함정들 (2/3)|작성자 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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