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아 대사님

빛의 일꾼 III (1/2)

빛몸 2019. 4. 23. 09:25







지구에 육화하는 빛의 일꾼들


지구에 육화했을 때, 여러분은 에고에 기초한 의식에서 가슴에 기초한 의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 대해서는 4단계로 나누어 이미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의 삶들을 점철해 왔던 권력 대결과는 “다른 뭔가(something else)”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첫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한 투쟁으로 인해, 여러분은 상당히 오랫동안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권력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됨에 따라, 은하계의 전투에서 여러분은 인간을 허수아비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은하의 제국들도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전쟁의 무대가 인간이 살고 있던 지구로 옮겨지게 되자, 여러분은 오히려 관찰자가 되었으며, 직접적인 전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오래전에 도달했던 상태로, 인간이 발달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심리적인 조종과 전쟁에 대한 정교한 방법들을 익힌, 수준 높은 전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유전자가 지구에 이식됨으로써, 인간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유전자의 이식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은 내면적으로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추론의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타고난 본능과 느낌이 해야 하는 본래의 기능은 거의 억제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언급했던 것처럼, 은하의 영향으로 인해, 발달해가고 있던 인간의 내면에 커다란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이러한 두려움이라는 요소는 사고(思考)의 기능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균형 잡힌 상태에서는 무엇이 옳고, 적절한지를 느낄 수 있는 능력과 자연스러운 직관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사고(思考)의 기능이 우세해지면, 두려움이 강화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고는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에 의존하므로, 이러한 과정에 직관과 느낌이 끼어들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감정이 정신의 기능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 정신의 기능은 도(度)를 넘어,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망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독재정권들이 이와 같이 도(度)를 넘는 지능(정신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을 덜 하고, 생명의 흐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덜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타고난 권리인, 은총의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빛의 일꾼이라 불리는 영혼들의 내면에서, 에고가 지배하던 단계가 끝나게 되었을 때, 이들에게는 새로운 존재의 방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직관적으로 가슴의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권력을 가지고 노는 단순한 게임을 뛰어넘는, 그런 창조력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권력 대결이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력 대결은 “남(다른 것)”인 모든 것을 죽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함으로써,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실제로 여러분의 현실을 변화가 없는 정적(靜的)이고,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궁극적인 면에서 보면, 권력이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참된 열망이 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창조적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성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지 안 든, 여러분은 언제나 어떠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력은 바로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본질입니다. 여러분은 에고의 단계에서 자신의 참된 본질을 부정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탐구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실제로는 뒤틀린 형태이지만, 이것도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창조적이 된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과 일치하여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고향”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순수하고, 더없이 행복했으며, 하나가 되어 있던 상태에 대한 모호한 기억이 여러분의 의식 속으로 다시 들어갔으며, 왠지 이것이 행복에 이르는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무지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고에게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가슴에 기초한 의식의 세계로 들어가지도 못 했던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지구에 살았던 인간들에게 행했던 행위들에 대해, 여러분의 내면에는 커져가는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특히, 지구에 살던 의식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멋진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당초 지구는 서로 다른 여러 에너지들을 통합하는 장소, 즉 상이하고, 심지어 반대되는 에너지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용광로가 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구의 에너지 장(場)은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지구에 사는 것과 우주의 다른 장소에 사는 것과의 차이는 물질적인 차원이든, 아스트랄 차원이든, 지구에는 수없이 다양한 에너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다양성이 여러 형태의 생명체, 혹은 종(種)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실제로는 하나의 단일한 존재, 즉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다른 존재보다도, 폭넓은 범위의 에너지들을 지닐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면에 살인자와 성자(聖者)의 에너지를, 아이와 어른 및 노인의 에너지를, 남성과 여성의 에너지를, 적극적인 에너지와 수동적인 에너지를, 이성적인 에너지와 감정적인 에너지를, 물(水), 공기(風), 불(火), 흙(地)의 에너지, 등등을 지닐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여러분에게는 하찮거나, 그저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우주의 다른 존재에게는 커다란 재주입니다. 인간이 되는 것은 어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어쨌든 위대한 업적(偉業)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독특한 자질은 이전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에너지들을 용해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이 모든 에너지들을 단지 지니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에너지들을 조정하는 중재자, 즉 에너지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드는 건축가가 되도록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영(Spirit) 혹은 하나님, 혹은 존재하는 모든 것(All-That-Is)이 인간이라는 개념을 창안해낸 이유는 우주가 정체(停滯) 상태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됨에서 벗어나, 생명을 탐구하게 되면서, 의식은 우주의 다른 차원과 장소들에서 다른 생명체를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영혼이 특정한 생명체에 깃들어 있던 모든 것들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영혼은 더 이상 그러한 생명체로 육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 생명체를 떠났으며, 영혼의 특정한 욕구에 부응하는 다른 생명체로 넘어갔습니다. 특정한 생명체 속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의 형태를 변형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해지면, 몸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영혼들이 게으르거나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밀도에 있어, 물질에서 아스트랄에 걸쳐 있는 대다수의 몸체들로는 체험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몸체 속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성장하거나 변형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몸체로는 서로 다른 에너지들을 아주 많이 지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로 이루어진 행성에서 물로 된 존재로 육화했다면, 이로 인해 온갖 방법으로 물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액체가 되는 “느낌”, 즉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흐르며, 움직이는 느낌은 정말로 훌륭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정되어 있고, 움직일 수 없는 체험을 원하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러한 몸체를 떠나, 잠시 산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권력을 추구하는 은하의 존재로 살았을 때, 그러한 몸체 속에서는 자신의 의식을 정말로 바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특정한 몸체로는 이처럼 제한된, 혹은 전문화된 체험 밖에는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창조된 생명체의 세계가 꼼짝할 수 없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의식이 성장하거나, 확장할 수 없게 되었으며, 뭐랄까 일종의 정체 속에 갇히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힘은 아주 다양한 에너지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들을 정체(停滯)가 아니라, 창조적인 균형 상태로 실현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힘은 어둠을 빛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영적인 연금술의 힘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서로 대립하던 에너지들이 역동적인 조화의 상태로 실현시키는 것은 그리스도 화된 에너지, 즉 이원성에 직면해서도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이것은 어둠을 변형시키는 에너지와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에너지를 받아들임으로써,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화된 에너지는 제3의 에너지로 받아들임으로써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화된 연금술적인 힘은 그리스도 화한 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성질, 즉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속성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여러분은 이러한 영적인 연금술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천사들도, "어둠의 제왕들(dark lords)"들도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영혼들은 빛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둠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주에 살고 있는 다른 온갖 종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가 있지만, 현재의 생명체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 어둠을 빛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은 혼자의 힘으로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물질적인 그리고 영적인 현실을 창조할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상상만으로는 내적인 차원에서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로 육화한 영혼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으며, 또한 자유의지도 지니고 있지만, 동일한 몸체, 즉 동일한(인간의) 형태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 아주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는 의식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여러분은 다리를 건설하는 자들이거나, 영적인 연금술사들이며, 이것이 바로 지구와 인간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빛의 일꾼 III (1/2) |작성자 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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