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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에 대하여

빛몸 2018. 3. 18. 07:58



공명에 대하여



"서로 연결되는 공명이 어떤 건지 더 잘 이해려면 넓은 호수를 떠올리면 됩니다.

이른 아침 잔잔하기 그지 없는 그 호수 옆에 돌 두개가 놓여 있소.
그런데 '사랑'이 걸어와 그 두 돌을 주워서 물 속에 던집니다.
하나는 호수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요.

찬물에 가서 풍덩 하고 부딪히는 기분이 상쾌하긴 하지만,
그 두 돌은 잠시 서로를 잃어버렸다고 느끼겠죠.
그래도 자신이 몸을 던져 물 표면 위에 넓게 퍼져가는 동심원들을 만들어냈다는 걸
알게 된 두 돌은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비록 아직은 외로운 퍼짐이긴 하지만요.

그러다가 갑자기 한 돌의 동심원이 다른 돌이 만들어낸 동심원과 교차하게 됩니다.
두 돌은 환희에 가득차 다른 돌을 찾아냈다는 걸 깨닫지요.
마침내 그들은 영적으로 상대방을 알아보는 법을 알게 되었기에,
그들의 교감은 더 확신에 차 있죠.
이런 확신을 가진 그들은 이제 두번 다시 상대를 잃는 법이 없죠."

이 이야기는 분리라는 주제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보태주었다.
아마도 사랑은 영적 분리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돌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던졌을 것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물에 만들어내는 물튀김들은 당연히 우리 자신인 사랑과 공명할 것이고,
우리의 동심원들이 확인할 수 있는 양태로 만날 때까지 무한을 향한 퍼짐은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예수가 떠난 후의 상실감을 어떻게 참아냈느냐고 자주 묻곤 한다.
이 물음에 답하기는 쉽다.

우리가 나눈 경험에서 얻은 것들 중 내가 아직도 지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디서나 그의 현존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 테니 말이다.

예수는
" 당신은 내 사랑에 의해 나를 알아볼 것이오. 영은 내 사랑에 공명하니까요"
라고 말했다.

신체 한계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니, 물론 그는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있다.
나는 자주 그의 현존을 느낀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나의 현존과 더불어 그의 현존을 느끼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듯이.
이런 자각으로부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고인(故人)들의 현존을 느끼는 법도 배웠다.
지금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자주 그들과 함께 있다.
나는 이제 신체적 의존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수 속으로 던져진 그 두 돌은 서로를 영 속에서 찾아냈기에 서로를 진실로 발견함으로써 끝난다.
우리가 한 영에 눈뜨게 되면
우정에 대한 우리의 관념도 필시 더 크고 새로운 의미를 띨 것이다.
참으로 많은 연결과 재연결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마도 우주를 가로지르면서까지!

이것은 기도나 명상으로도 일어날 수 있고, 공감의 순간들에 일어날 수도 있다.

"연결과 재연결이 봄꽃들처럼 만발할 것이오.
그것들은 회색빛 겨울로부터 찬란하게 빛나며 싹을 틔울 것이오.
영의 무한성은 우리 모두와 공명할 잠재력을 가진 바다와 흡사합니다.
구조의 벽과 장애들을 제거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위대한 매체를 통해 시간이나 거리에 상관없이 교제할 수 있소.
그 안에는 기도와 공감과 예언의 권능이 들어 있소."



끝없는 사랑 / 글렌다 그린 지음